버크의 프랑스 혁명 비판과 종교 정신

우리 주변에서 이성을 넘어서는 문제에 부딪히면 초월자를 찾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던 사람조차도 현실의 거대한 공포 앞에서는 겸손해지죠. 인간 사회의 오랜 근간을 이루어온 종교는 어느 사회에서나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습니다.

종교는 사람들 사이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행동 범위를 규정해왔습니다. 삶의 목표, 결혼관, 직업관, 인간관계, 관습 등은 종교와 깊은 관련 속에서 이루어져 왔죠. 근대 국가가 형성되기 전에는 법보다도 우선시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 사회의 틀을 형성한 종교는 사회적 형식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개인에게는 더 본질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람들과 어떤 마음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등 인간 내면의 형식을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자비와 온유함이 결여된 참혹한 행위들이었습니다. 버크는 숭고한 이상을 내세운 혁명 세력들이 저지른 행위들을 비난합니다. 당시 프랑스는 기독교의 영향이 강했고, 성당은 지역 공동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관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성당의 부패를 보고 불만을 품은 평민들은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종교가 가져온 유익을 망각한 채 말이죠. 기독교의 정신 중 하나인 사랑이 사라지고, 오직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는 사건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 세력을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비판합니다. 종교와 종교의 부패는 다른 관점에서 고려해야 하며, 종교인과 종교 기관의 부패는 사회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 세력의 청년에게 이렇게 답장을 씁니다*.

“당신들은 기사도 정신과 종교의 정신을 버렸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지지한 청년은 버크가 미국 독립 혁명을 지지했기에 프랑스 혁명 또한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The Spirit of Religion

We often witness people turning to a transcendent being when faced with problems beyond reason. Even those who once denied the existence of God find themselves humbled in the face of immense fear. Religion, which has long been a foundation of human society, has exerted profound influence across all societies.

Religion has maintained order among people and set norms for the behavior of individuals and communities. Life’s goals, views on marriage, career, human relationships, and customs have all been closely intertwined with religion. In fact, before the rise of modern states, religion was often prioritized over law.

For a long time, religion shaped the framework of human society, maintaining social order while offering individuals deeper, more essential meanings. It provides a structure for how we should live and how we should interact with others, shaping our inner lives.

However, the events of the French Revolution were a series of cruel acts devoid of mercy and gentleness. Burke condemned the revolutionaries, who, despite their lofty ideals, committed atrocious deeds. France, strongly influenced by Christianity, had churches that served as pillars of local communities.

Yet, the peasants, dissatisfied with the corruption within the Church, made the mistake of rejecting religion itself, forgetting the historical role religion played in sustaining their communities. As love, one of the central tenets of Christianity, disappeared, events began to unfold that denounced not just the Church but Christianity itself.

Burke criticized the French revolutionaries, calling their actions ‘imprudent decisions.’ He argued that religious corruption should be considered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and that the corruption of religious institutions and individuals should be addressed through improvements in the social system.

Burke wrote the following in a letter to a young revolutionary in France:

“You have forsaken the spirit of chivalry and the spirit of religion.”

에드먼드 버크는 누구인가?

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누구인가?

직사각형 공간 속 긴 의자가 대립하듯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정렬된 의자는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작은 빈틈도 상대방 진영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한 단결함을 보여주듯이. 이렇게 언설이 교착되는 이 공간은 대영국제국의 의회이다. 누가 봐도 불편한 긴 의자와 딱 붙어 앉아 있는 의원들 간의 거리. 오로지 상대방의 언어와 논리에 집중하는 순간. 그 순간을 가장 잘 활용한 정치가는 에드먼드 버크가 아닐까?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이 가장 번영한 시기에 휘그당(야당)의 대표 연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의견(opinion)에 열정을 듬뿍 담아 상대방을 설득해 갔다. 인도 식민지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총독을 비난한다든지, 합리적이지 않았던 미국 식민지 세금 인상에 반대한다든지 그는 옳지 못한 일에 자유롭게 의견을 주장했다.

가장 알려진 의견은 도버 해협을 맞닥뜨리고 오랫동안 영국과 대립 관계에 있었던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우리에게는 지금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과 평화의 상징이었던 프랑스혁명에 대한 코멘트였다. 그는 그의 사상을 확실한 경험에 의거해 자유롭게 논했다.

그의 주장은 의회의 연설과 출판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성의 힘을 강조한 철학자들이 많은 프랑스에서 가장 감정적인 혁명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한 혁명의 과정들을 지켜본 버크는 프랑스 혁명이 결코 혁명 세력의 이상적인 사회를 구축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프랑스 혁명 세력이 추구한 시민의 자유는 이성의 울타리를 벗어난 감정의 표출의 한 형태였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이 영국에 건너오는 것을 대단히 경계했다. 그래서 프랑스혁명 발발 바로 다음 해에 [프랑스 혁명의 성찰]을 출판한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가 누구인가? 라고 질문하면 보통은 특정 원리에 집착하는 보수주의자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현 영국의 보수당이 그렇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한 경위도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어떠한 확고한 진리를 고수하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보편적 원리를 끊임없이 적용하고 고찰한 흔적들이 보인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보편적 원리와 현실을 구분할 줄 알고 좀 더 보편적 원리에 가까워지도록 연구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모습일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의 주장에 관해 그 내용에 주목하지 않는다. 정치, 외교, 문화 등을 대하는 그의 자유주의적 태도에 흥미를 가진다. 그러한 삶의 태도와 사고를 키웠던 젊은 버크의 작품들을 읽어간다. 그의 사상이 서양에서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공감이 되는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한 모습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의 버크를 고찰하는 것은 동양의 시민사회의 성숙을 위한 사상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Rectangular spaces with long benches arranged opposite each other are neatly aligned. The aligned benches are connected in a row, as if to show unity, leaving no small gaps to the opposing side. This space, where rhetoric is locked in battle, is the Parliament of the British Empire. The uncomfortable long benches and the close proximity of the members, focusing solely on the opponent’s language and logic. The politician who utilized these moments most effectively was Edmund Burke.

Edmund Burke gained renown as the leading orator of the Whig Party (the opposition) during Britain’s most prosperous period. He passionately defended what he believed to be right, persuading his opponents with fervor. Whether criticizing the corrupt governor in the Indian colony or opposing the unreasonable tax increases in the American colonies, he freely expressed his opinions against injustices.

One of his most well-known opinions concerned an event in France, a country long at odds with Britain across the English Channel. To us, the French Revolution symbolizes human dignity, human rights, and peace. Burke commented on this. He freely discussed his thoughts based on solid experience.

His arguments were communicated to the public through parliamentary speeches and publications. In France, where many philosophers emphasized the power of reason, the most emotional revolution took place. Observing the revolution’s processes, Burke predicted that the French Revolution would never achieve the ideal society envisioned by the revolutionaries. The freedom sought by the French revolutionaries was a form of emotional outburst that stepped outside the bounds of reason. He was very wary of such common sense crossing over to Britain. Hence, he published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the year after the revolution broke out.

When asked, “Who is Edmund Burke?” most would answer that he is a conservative fixated on certain principles. Indeed, the current Conservative Party in Britain has interpreted him to fit their perspective. However, a closer look at his arguments reveals traces of applying and examining universal principles to fit the circumstances rather than adhering to any fixed truth. A true liberal distinguishes between universal principles and reality and strives to get closer to the universal principles. That is the true image of a conservative.

Regarding Edmund Burke’s claims, attention is not focused on their content but on his liberal attitude towards politics, diplomacy, and culture. I am interested in his young works that shaped such an attitude and way of thinking. I believe the reason his ideas resonate not only in the West but also in Asia is because they pursue human freedom. I believe examining Burke in Asia will provide an ideological foundation for the maturity of civil society in the E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