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자기계발의 한계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느 서점을 가더라도 자기계발서 코너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고자 동기부여의 계기를 책에서 찾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을 연마하고 변화하려는 자세는 자기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본질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 외부에 있는 미학적 가치’를 위한 자기계발은 어느 순간 의욕을 잃고 포기하기 쉽습니다. 즉,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기계발은 중도에 멈추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마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는 오래 걸을 수 없는 원리와 같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을 꾸려나갑니다. 생존과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감정적, 이성적 동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위협이 줄어든 반면,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내면이 아닌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자극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공유되며 동경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이를 모방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삶’을 따라하려다 자신의 삶을 개조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계발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결국 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과 유사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삶을 참고하며,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The Limits of Aimless Self-Development

In both Korea and Japan, it’s common to see people gathering in the self-help sections of bookstores. Most of them seem to be seeking a source of motivation from books to bring about change in their lives. The attitude of refining and transforming oneself is essential and fundamental to personal growth.

However, self-development pursued for “external aesthetic values” often leads to losing motivation and giving up midway. In other words, self-development that doesn’t consider one’s own nature is more likely to end in failure—much like how wearing ill-fitting shoes makes it impossible to walk long distances.

Humans are driven by instinct to navigate life. The desire for survival and beauty serves as significant emotional and rational motivators. In today’s world, threats to survival have decreased, but the instinctual drive for beauty has grown stronger.

People have begun to seek beauty “outside themselves,” stimulated by external sources rather than inner reflection. As they admire the glamorous lives shared by others, they aspire to imitate “their lives” and attempt to remodel “their own lives.”

This kind of motivation for self-development might yield short-term results but often leads to abandonment in the long run. To overcome this, we need to revise the order of priorities. First, we should take time to understand ourselves, then look to the lives of those who have lived the kind of life we aspire to. By doing so, we can transform ourselves in a way that suits our personal style. When we shift this order, we can truly live a life that is authentic to ourselves.

目的のない自己啓発の限界

韓国でも日本でも、どの書店に行っても自己啓発書のコーナーにはいつも人が集まっているのを見かけます。多くの人は、自分の人生に変化をもたらすため、書籍から動機づけのきっかけを見つけようとしているようです。自分を鍛え、変化しようとする姿勢は、自己成長において非常に重要で本質的な態度だからです。

しかし、「自分の外にある美的価値」を追求するための自己啓発は、いつの間にか意欲を失い、途中で諦めてしまうことが多いのです。つまり、自分に合わない自己啓発は途中で挫折する可能性が高いのです。それは、足に合わない靴を履いて長時間歩けないのと同じ原理です。

人間は本能に従って生きています。生存と美しさは、人間にとって重要な感情的・理性的な動機づけとなります。現代社会では、生存本能を刺激する脅威は減少する一方で、美しさに対する本能はますます強まっています。

人々は、社会の流れの中で、自分の内面ではなく感覚器官を通じて外部の刺激から美しさを見つけ始めました。華やかな生活を送る人々の姿が共有され、それに憧れを抱き、「彼らの人生」を模倣しようとします。そして、「自分の人生」を改造しようとするのです。

このような自己啓発の動機づけは短期的には効果があるかもしれませんが、最終的には放棄してしまうことが多いのです。この順序を修正する必要があります。まずは自分を理解する時間を持ち、自分が目指す人生を歩んでいる先輩たちの人生を参考にしながら、自分のスタイルに合った変化を目指すべきです。このように順序を見直すことで、真の自分らしい人生を歩むことができるのです。

일상을 표현한 시인 타니카와 슌타로 별세

타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郎) 씨가 92세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일상의 진부함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표현하는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담백한 시어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때로는 인간의 솔직한 본성을 은유로 드러내어 양심을 일깨우기도 했습니다. 타니카와 씨는 ‘인간을 표현하는 예술가’라는 직업의 소명을 온전히 보여준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정신에서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Shuntaro Tanikawa (aged 92) has passed away.

He was a poet who captured the ordinariness of daily life with remarkable simplicity and sincerity. His plain yet profound poetic expressions resonated deeply with many, and at times, his metaphors unveiled the raw truth of human nature, pricking at the conscience. Tanikawa embodied the calling of being an “artist who expresses humanity.” We have much to learn from his enduring spirit.

배움의 시간을 마련해야 할 나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통제할 수 없는 관념이 되어갑니다. 학생 시절에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어떤 사람도 될 수 있었고, 시간이라는 요소로 이루어진 삶을 자신의 감정과 의지로 이끌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감정과 의지는 점점 둔해집니다. 그 대신 젊은 시절에 했던 다양한 활동의 흔적들만이 남게 됩니다. 삶에 깊숙이 새겨진 이 흔적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살’을 재생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내•외적인 감각이 둔해지면서 호기심과 상상력도 함께 잃어가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인생을 자연법칙의 흐름에 맡기면서도 ‘새로운 살’을 재생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아이를 낳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정신없이 바쁘며,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합니다. 자연스레 ‘배움’의 깊이는 얕아지기 마련입니다.

깊이가 없는 인생은 언젠가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에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여 ‘배움’의 흔적을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학생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더 현실적이고 더 다양한 영역에서 배움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데 나이의 제한은 없습니다.

As we age, time increasingly becomes an uncontrollable concept. In our student years, it was easy to begin various activities out of pure curiosity. With determination alone, we could become whoever we wished, leading a life constructed of time through our own emotions and will.

However, as time passes, our emotions and willpower grow dull. Only traces of the various activities from our youth remain. These deeply ingrained marks in life can become obstacles to regenerating “new skin.” As our inner and outer senses dull, we gradually lose curiosity and imagination.

As we age, we must continue to let our lives flow naturally with the laws of nature, while also striving to regenerate this “new skin.” Our lives do not end in this world alone, which is why we must keep learning.

Marriage, building a family, and raising children to create a new community is always busy and demands constant generation of new ideas for survival. Naturally, the depth of “learning” tends to become shallow.

Without depth, our lives are bound to wander at some point. Therefore, we must allocate a certain time in life to rediscover the traces of “learning.” Unlike in our student years, learning now should be more practical and span a wider variety of fields.

There is no age limit to learning.

대북 확성기의 재개

7월 18-19일 이틀 동안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날려 보내온 오물 풍선에 대한 빠른 조치였다. 확성기의 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외부 위협에 대한 빠른 조치는 상대국에게 긴장감을 줌으로써 억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는 오물 풍선이 떨어진 시민 사회의 공간이다. 실제로 오물 풍선이 일상의 영역에서 떨어져 개인에게 피해가 끼치고 있다. 다행히 오물 풍선에 의해 자동차 앞유리가 파손된 개인은 보험 회사의 면책 규정에 의해서 보험금을 받고 다음 해의 보험료도 할증하지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는 오물 풍선에 대한 북한 정부에 대한 확고한 입장 발표와 동시에 국민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줄 의무가 있다. 대북 확성기의 재개는 국가적/군사적으로 빠른 조치였지만 시민 사회에 대한 조치는 다소 느리게 느껴진다. 대북 확성기의 재개와 동일하게 국민들에게도 정부의 입장 확성기를 설치해주기를 희망한다.

Resumption of Loudspeaker Broadcasts to North Korea

For two days, on July 18-19, South Korea resumed loudspeaker broadcasts to North Korea. This was a swift response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o the balloons filled with waste sent from North Korea. While the effectiveness of the loudspeakers is uncertain, rapid actions against external threats are believed to create tension for the opposing country, serving as a deterrent.

Another issue that needs consideration is the space within civil society where these waste balloons have landed. These balloons have fallen in everyday areas, causing personal damage. Fortunately, the individual whose car windshield was damaged by a waste balloon will receive compensation from their insurance company under the exemption clause, and their insurance premiums will not increase next year.

The government has a duty to make a firm statement to the North Korean government regarding the waste balloons and to provide a thorough explanation to the public. Although the resumption of the loudspeaker broadcasts was a prompt national and military response, the actions towards civil society feel somewhat delayed. Just as the government swiftly resumed the loudspeaker broadcasts, it is hoped that the government will also clearly communicate its stance to the public.

“부모”를 떠나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독립 중 하나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두 사람이 한몸이 될 것이다. 창세기‬ ‭2‬:‭24‬ 

20대 중반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목적이 있었던 헤어짐이었기에 외로울 틈도 없었죠. 그리고 연락 수단이 많아졌기 때문에 평소의 안부는 종종 알 수 있어서 그렇게 떨어져 산다고 생각해본 적도 사실 없습니다. 그렇게 혼자 살던 생활에서 결혼을 해보니 ‘부모를 떠나’라는 문장을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같이 안 사는 것을 ‘부모를 떠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이 ‘부모를 떠나’는 인생의 과정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욱 깊은 기쁨과 고독이 도사리는 광야에서 생활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한 생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부모를 떠나’는 때를 살펴보면 결혼을 한 남녀가 부모로부터 떠나는 시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한 남자가 안전한 부모의 품을 떠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생활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한 부부가 한몸이 됨으로 당연히 부모로부터 독립이 되어지는 거죠.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하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을 아무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때와 ‘짝’을 찾기란 지금 같은 시대에는 너무 어렵지만 ‘자연’에 따른 인간 감정을 거스르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It has already been 10 years since I started living apart from my parents in my mid-20s. Since it was a separation with a purpose, there was no time to feel lonely. Moreover, with the increased means of communication, I could frequently check on their well-being, so I never really thought about living apart from them. However, after getting married and living alone, I began to reconsider the phrase ‘leaving one’s parents.’

I have started to realize that simply not living together is not the true meaning of ‘leaving one’s parents.’ Furthermore, I realized that achieving economic independence is not the entirety of the process of ‘leaving one’s parents.’ It feels like living in a wilderness where deeper joy and solitude reside.

What is the essence of such a life? Looking at the time of ‘leaving one’s parents,’ it describes the period when a married couple leaves their parents. I think it means that a married man leaves the safe embrace of his parents to become the head of a new household and create a new community.

When a married couple becomes one, it naturally leads to independence from their parents. No one can interfere with the natural life process of loving someone and getting married. Although finding the right time and partner in today’s world is very difficult, I believe it is very foolish to go against human emotions that follow ‘n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