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총체적 활동의 본질입니다. 세련된 신학적 사상들의 파편들도 단지 언어로 표현된 신앙의 단편적인 관념들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5)
성경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명확히 이야기합니다. 관념적인 삶을 살지 말고 모든 삶의 순간에 열정과 냉철함을 더해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사랑에는 실체가 없는 관념도, 허물 뿐인 행동도 없습니다“
the essence of the totality of a Christian’s actions
Faith is the essence of the totality of a Christian’s actions. Even fragments of refined theological thoughts merely speak of fragmented ideas of faith expressed in words.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Deuteronomy 6:5)
The Bible speaks clearly to those who are saved. It tells them not to live a life of mere ideas, but to love with both passion and discernment in every moment of life.
“Love has neither empty ideas nor hollow actions.”
어릴 때부터 종종 받는 질문 중에 하나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받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에게도 물어볼 때도 있었던 거 같아요. 어떤 때는 구체적인 직업과 그 활동의 내용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적도 있습니다. 또 어떨 때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목표로 설정한 적도 있죠.
어느 순간 환경이 변함에 따라 나의 목표가 계속 바뀐다는 거를 알게 되었어요. 목표가 매번 바뀐다는 사실을 깨닫는 나이가 될 때쯤에는 위의 질문이 무엇보다 덧없이 느껴지게 되죠.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었지?
그래서 부모들의 목표는 “현실”이라고 표현되는 활동에 몰두하게 됩니다. 자녀교육, 여행, 건강 등이죠. 그렇다면 위의 질문은 인생의 일부분만 경험하고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만 가슴을 뜨겁게 하는 질문일까요?
인생의 끝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는 인간들에게는 어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처음부터 맨손으로 안개를 잡으려고 하는 것에 비유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필연적 탄생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우리의 존재는 태초부터 하나님의 고유한 목표 안에서 주체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인생의 목표를 알 수있게 해주셨습니다. 우선순위가 엉망이 되었던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도 질서 있게 재배열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게 알고 싶은 열망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읽게 하고 기도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세상 어떤 것보다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랑은 배타적이지도 않으며 고정되어있지 않으며 유동적인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표현됩니다.
나이가 뜸에 따라 젊었을 때의 인생의 목표는 없어졌어요. 하지만 목표자체가 없어진 거는 아닙니다. 더욱 깊고 광범위한 목표를 얻었죠. 그 목표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사랑”입니다.
아들: 엄마, 일본은 왜 한국이랑 차가 반대로 달리고 있어요? 엄마: 여기는 일본이라서 그런단다. 만약에 지금 달리고 있는 차가 한국에서 달릴 때는 반대로 달려야겠지.
시민의 일상은 국가의 법률의 기반 위에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인생을 그 기반 위에 그려나갑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기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신자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삶의 기반이 새롭게 변합니다. 지금까지 악(*여기서 ‘악하다’라는 의미는 도덕적 의미가 아니다. 더 광범위하고 존재론적 의미)한 세계의 법을 따르고 있었다면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법을 따르며 살아가게 되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도덕적 기준과 선한 행동의 범위가 한층 업그레이드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영원하고 유일한 선생님(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은 자신의 삶으로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인간 사회의 법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조선 시대의 법은 현재 대한민국에는 적용되지 않죠. 그리고 일본의 법은 한국에서 적용되지 않죠.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법은 무엇일까요?
신자의 삶은 끊임없이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고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사랑은 물질적인 개념을 초월하기에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베풀 수 있습니다.
위의 일화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대답에서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자로 믿는다면 당연히 생명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법이 아주 자연스럽게 삶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Anecdote] Son: Mom, why do cars drive on the opposite side in Japan compared to Korea? Mom: It’s because we’re in Japan. If the cars driving now were in Korea, they would have to drive on the opposite side.
Our daily lives are built on the foundation of a country’s laws. We accept this very naturally without even realizing it and live our lives on that foundation. Most people don’t question this foundation.
For believers in Jesus Christ as their Savior, an important foundation for their lives changes fundamentally. If they were following the laws of an evil (*here, ‘evil’ is meant in a broader, ontological sense, not just a moral one) world, Christians now live according to the law of life.
Their previous moral standards and scope of good deeds will be significantly upgraded because our eternal and only teacher (Jesus Christ) showed us the standard through His own life.
Furthermore, the law of life transcends time and space. Human laws are limited by time and space. The laws of the Joseon Dynasty don’t apply to modern-day South Korea, and Japanese laws don’t apply in Korea. However, God’s law transcends time and space.
So, what is the law of life?
The life of a believer should constantly seek to restore and practice lost love. Love transcends material concepts and can be given at any time and place.
From the mother’s last answer in the anecdote, we can understand that if you believe in Jesus Christ as a believer, you should naturally follow the law of life. In God’s kingdom, God’s law will naturally become the foundation of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