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확성기의 재개

7월 18-19일 이틀 동안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날려 보내온 오물 풍선에 대한 빠른 조치였다. 확성기의 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외부 위협에 대한 빠른 조치는 상대국에게 긴장감을 줌으로써 억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는 오물 풍선이 떨어진 시민 사회의 공간이다. 실제로 오물 풍선이 일상의 영역에서 떨어져 개인에게 피해가 끼치고 있다. 다행히 오물 풍선에 의해 자동차 앞유리가 파손된 개인은 보험 회사의 면책 규정에 의해서 보험금을 받고 다음 해의 보험료도 할증하지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는 오물 풍선에 대한 북한 정부에 대한 확고한 입장 발표와 동시에 국민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줄 의무가 있다. 대북 확성기의 재개는 국가적/군사적으로 빠른 조치였지만 시민 사회에 대한 조치는 다소 느리게 느껴진다. 대북 확성기의 재개와 동일하게 국민들에게도 정부의 입장 확성기를 설치해주기를 희망한다.

Resumption of Loudspeaker Broadcasts to North Korea

For two days, on July 18-19, South Korea resumed loudspeaker broadcasts to North Korea. This was a swift response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o the balloons filled with waste sent from North Korea. While the effectiveness of the loudspeakers is uncertain, rapid actions against external threats are believed to create tension for the opposing country, serving as a deterrent.

Another issue that needs consideration is the space within civil society where these waste balloons have landed. These balloons have fallen in everyday areas, causing personal damage. Fortunately, the individual whose car windshield was damaged by a waste balloon will receive compensation from their insurance company under the exemption clause, and their insurance premiums will not increase next year.

The government has a duty to make a firm statement to the North Korean government regarding the waste balloons and to provide a thorough explanation to the public. Although the resumption of the loudspeaker broadcasts was a prompt national and military response, the actions towards civil society feel somewhat delayed. Just as the government swiftly resumed the loudspeaker broadcasts, it is hoped that the government will also clearly communicate its stance to the public.

“부모”를 떠나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독립 중 하나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두 사람이 한몸이 될 것이다. 창세기‬ ‭2‬:‭24‬ 

20대 중반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목적이 있었던 헤어짐이었기에 외로울 틈도 없었죠. 그리고 연락 수단이 많아졌기 때문에 평소의 안부는 종종 알 수 있어서 그렇게 떨어져 산다고 생각해본 적도 사실 없습니다. 그렇게 혼자 살던 생활에서 결혼을 해보니 ‘부모를 떠나’라는 문장을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같이 안 사는 것을 ‘부모를 떠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이 ‘부모를 떠나’는 인생의 과정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욱 깊은 기쁨과 고독이 도사리는 광야에서 생활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한 생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부모를 떠나’는 때를 살펴보면 결혼을 한 남녀가 부모로부터 떠나는 시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한 남자가 안전한 부모의 품을 떠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생활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한 부부가 한몸이 됨으로 당연히 부모로부터 독립이 되어지는 거죠.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하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을 아무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때와 ‘짝’을 찾기란 지금 같은 시대에는 너무 어렵지만 ‘자연’에 따른 인간 감정을 거스르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It has already been 10 years since I started living apart from my parents in my mid-20s. Since it was a separation with a purpose, there was no time to feel lonely. Moreover, with the increased means of communication, I could frequently check on their well-being, so I never really thought about living apart from them. However, after getting married and living alone, I began to reconsider the phrase ‘leaving one’s parents.’

I have started to realize that simply not living together is not the true meaning of ‘leaving one’s parents.’ Furthermore, I realized that achieving economic independence is not the entirety of the process of ‘leaving one’s parents.’ It feels like living in a wilderness where deeper joy and solitude reside.

What is the essence of such a life? Looking at the time of ‘leaving one’s parents,’ it describes the period when a married couple leaves their parents. I think it means that a married man leaves the safe embrace of his parents to become the head of a new household and create a new community.

When a married couple becomes one, it naturally leads to independence from their parents. No one can interfere with the natural life process of loving someone and getting married. Although finding the right time and partner in today’s world is very difficult, I believe it is very foolish to go against human emotions that follow ‘nature.’

개인의 안전한 직장생활의 확보

안전한 직장 확보가 우선입니다

경기도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2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희생되었다. 그들의 삶을 빼앗아간 화재의 원인을 하루빨리 찾고 가족들에게 설명을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다음은 직접적인 원인을 관리하지 못한 회사의 책임과 사고에 대한 안전성을 정부가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이 정부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다. 처음부터 정부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확산된다면 가장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Securing a Safe Workplace for Individuals

A fire broke out at a lithium battery manufacturing plant in Hwaseong, Gyeonggi Province. Over 20 workers lost their lives. The priority should be to quickly determine the cause of the fire and explain it to the families of the victims. Next, the company must be held accountable for failing to manage the direct causes, and the government should inspect the safety measures related to the incident. Only then should criticism be directed at the government. If public outrage targets the government from the start, the most immediate contributors to the incident may go unnoticed.

Our deepest condolences to all the victims.

쉬운 길이 아닌 확실하지만 어려운 길을 선택

특검법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 시민의 대표자를 뽑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직접선거이기때문에 말그대로 다수의 표로 리더가 뽑히는 정치적 구조입니다. 즉 정치적  정통성을 지닌 지도자가 나오는 정치제도를 소유하고 있는거죠.

그리고 행정부 뿐만아니라 사법부, 입법부도 고유의 방법으로 정통성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국가기관은 정치적 정통성을 기반으로 고유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혁신하며 획득한 ”지혜“를 축적해왔습니다. 그 지혜는 지금도 내/외부의 교류를 통해 갱신되고 있죠.

채상병의 특검법 법안이 부결되었습니다. 여/야당의 분위기는 희비가 갈라졌습니다. 특검법은 특정사건을 관할하는 국가기관이 아닌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독립한 제3자가 해당사건을 수사하는 법안입니다. 특검법이 현재 채상병과 관련된 모든 진실을 규명할수 있을까요? 특검법을 찬성하는 국회의원들은 최종목적이 무엇일까요? 특검법을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의 꿍궁이는 무엇일까요?

특검법에 대해 재고찰해야합니다. 왜냐하면 특검법이 유효하게 활용되었던 사건은 정말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건 이외에는 사건에 관련된 약자들만 희생되고 실제 사건의 가해자는 언론에 묻혀버렸습니다. 이득을 본자들은 무능력한 정치인들 뿐입니다.

특정 권력기관에 모든 사건의 수사권을 맡기는 대신에 시민은 정치적으로 미숙한 정부기관에 혁신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더욱 단련하는 길을 선택 해야합니다. 개인의 양심의 질이 향상된다면 말뿐인 정치인의 말에는 휘둘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어른”이 된자로써 최소한의 행동을 취할 때입니다.


“In a democratic country, citizens elect their representatives through elections. Korea’s presidential system involves direct elections, meaning that the leader is chosen by the majority of votes, providing a political structure where the leader possesses political legitimacy.

In addition to the executive branch, the judiciary and the legislature also have their own methods of securing legitimacy. Based on political legitimacy, state institutions have continuously innovated within their own domains, accumulating ‘wisdom’ over time. This wisdom is constantly being updated through internal and external exchanges.

The bill for a special prosecutor in Corporal Chae’s case was rejected. The atmosphere between the ruling and opposition parties was divided between joy and sorrow. The special prosecutor law allows an independent third party, free from political pressure, to investigate a specific case. Can the special prosecutor law uncover all the truths related to Corporal Chae? What is the ultimate goal of the lawmakers who support the special prosecutor law? What are the hidden motives of those who oppose it?

We need to re-examine the special prosecutor law, as it has been effectively used in only a few cases. Apart from successful cases, only the vulnerable involved in the incidents have been sacrificed, while the actual perpetrators have been buried by the media. The only ones who have benefited are incompetent politicians.

Instead of entrusting all investigative powers to a specific authority, citizens should demand innovation from politically inexperienced government institutions while strengthening their own consciences. If the quality of individual conscience improves, people will not be swayed by the words of insincere politicians. It will take time, but for the sake of the next generation, it is time for those who have become ‘adults’ to take at least minimal action.”

자신을 삶을 주도하는 사람의 유익

1980년대-90년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자유”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모습들이 보입니다. 지금보다 정치적/경제적으로 불안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인권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법률도 없었던 시대였음에도 그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있다”라는 인상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결정에 따른 어떠한 결과라도 “책임의 자물쇠”를 채우고 그 열쇠를 자신들이 소유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열쇠를 가지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곤 했습니다. 심지어 하찮아 보였던 결과 속에서 보물들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불행한 시간도 행복한 시간도 그들 것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타인에게 시간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빼앗긴 개인은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삶으로 인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내 것을 놓아버리는 습관으로 “타인”의 것이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진학, 취업, 결혼, 노후 생활…

오늘 하루, 주어진 인생을 타인들 속에서 “자신”의 모양으로 만들어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이든 불행한 인생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삶을 선택해야겠죠. 그 결단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은 누구보다 큰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자유는 오로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자만 느끼는 가장 큰 유익입니다.

The Benefits of Leading One’s Own Life

Watching videos from the 1980s and 90s reveals traces of “freedom” deeply etched into the lives of people from that era. Despite being politically and economically unstable compared to today, and lacking the basic laws that guarantee the human rights we take for granted now, they seem to have had a sense of “leading their own lives.”

People who led their own lives had “their own” time regardless of the circumstances. Whatever results came from their decisions, they locked them with the “key of responsibility” and kept that key to themselves. They would open the door and walk through whenever they wanted. They even found treasures in seemingly trivial outcomes. Both unhappy and happy times were theirs.

At some point, the time given to individuals ceased to be “theirs.” They began to lose their time to others. As a result, these individuals, whose time had been taken, started to lead lives dragged by others. Gradually, by the habit of giving up their own things, they began to mistake “others'” things for “their own.” Academic advancement, employment, marriage, and retirement…

Today, we need to practice shaping our given lives into “our own” forms amidst others. We must choose to embrace and live through both happy and unhappy lives with courage. I know how difficult this decision can be. However, an individual can gain the greatest “freedom” by doing so. That freedom is the greatest benefit that only those who live “their own” lives can fe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