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라는 착각

우리는 착각 할때가 있다.

‘잃어버리다’라는 뜻에는 ‘가지고 있었다’ 문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재산을 잃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잊어버렸다라는 뜻에도 같은 맥락에서 말할 수 있다. 기억하고 있었다라는 문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린 처음부터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한다느니 회복해야 한다느니 말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은 에덴동산 자유의 시절뿐이다.

The Illusion of “Having”

The meaning of ‘losing’ implies that the phrase ‘having had’ must precede it. Someone who says they lost their property can say so because they had the property to begin with. Similarly, in the context of ‘forgetting,’ the phrase ‘having remembered’ must precede it.

We had nothing from the start. Yet, we have a habit of saying that we need to find or recover something. But there was never anything we could truly say we “had” from the beginning. The only time we could ever say we “had” anything was during the era of freedom in the Garden of Eden.

“부모”를 떠나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독립 중 하나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두 사람이 한몸이 될 것이다. 창세기‬ ‭2‬:‭24‬ 

20대 중반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목적이 있었던 헤어짐이었기에 외로울 틈도 없었죠. 그리고 연락 수단이 많아졌기 때문에 평소의 안부는 종종 알 수 있어서 그렇게 떨어져 산다고 생각해본 적도 사실 없습니다. 그렇게 혼자 살던 생활에서 결혼을 해보니 ‘부모를 떠나’라는 문장을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같이 안 사는 것을 ‘부모를 떠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이 ‘부모를 떠나’는 인생의 과정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욱 깊은 기쁨과 고독이 도사리는 광야에서 생활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한 생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부모를 떠나’는 때를 살펴보면 결혼을 한 남녀가 부모로부터 떠나는 시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한 남자가 안전한 부모의 품을 떠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생활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한 부부가 한몸이 됨으로 당연히 부모로부터 독립이 되어지는 거죠.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하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을 아무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때와 ‘짝’을 찾기란 지금 같은 시대에는 너무 어렵지만 ‘자연’에 따른 인간 감정을 거스르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It has already been 10 years since I started living apart from my parents in my mid-20s. Since it was a separation with a purpose, there was no time to feel lonely. Moreover, with the increased means of communication, I could frequently check on their well-being, so I never really thought about living apart from them. However, after getting married and living alone, I began to reconsider the phrase ‘leaving one’s parents.’

I have started to realize that simply not living together is not the true meaning of ‘leaving one’s parents.’ Furthermore, I realized that achieving economic independence is not the entirety of the process of ‘leaving one’s parents.’ It feels like living in a wilderness where deeper joy and solitude reside.

What is the essence of such a life? Looking at the time of ‘leaving one’s parents,’ it describes the period when a married couple leaves their parents. I think it means that a married man leaves the safe embrace of his parents to become the head of a new household and create a new community.

When a married couple becomes one, it naturally leads to independence from their parents. No one can interfere with the natural life process of loving someone and getting married. Although finding the right time and partner in today’s world is very difficult, I believe it is very foolish to go against human emotions that follow ‘nature.’

우리는 왜 생각을 멈추었는가

우리는 왜 생각을 멈추었는가?

갑자기 새로운 환경에 처했을 때 우리 마음은 분주해집니다. 모든 감각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성은 정보를 부지런히 취합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마음에 생기를 불어일으켜 어지러웠던 마음을 정리시킵니다. 

최근 저의 주니어가 탄생했습니다. 육아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체력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죠. 지금까지의 의지 결단과는 차원이 다른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저는 스트레스가 없는 의지결단과 행동의 힘을 고찰해 보았습니다. 누구라도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될텐데 제가 발견한 점을 적용해서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기 위해서 중요한 포인트는 “전심으로 감각기관을 개방“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실패합니다. 나와 비슷한 새로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고 자신에게 적용합니다. 물론 타인에게 배울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성향을 가졌고 새로운 상황 또한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사한 예와 해결책을 조사하기 전에 우리의 감각을 활짝 열어 새로운 환경을 면밀히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생각을 멈추게 되었는 원인은 개인의 “의지” 이전의 “감각의 결핍”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의지“의 뜻은 ”어떠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는 느껴야 하며 편견없이 ”잘“ 느껴야 좋은 ”사고“를 하게 됩니다. 좋은 감각이야말로 좋은 의지를 가지게 하며 좋은 생각을 낳을 수 있는 출발점 입니다.


“When suddenly placed in a new environment, our minds become busy. All our senses take in new information, and our reason diligently processes this information. This process invigorates our minds, helping to organize the chaos and prompting us to take appropriate actions for survival in the new environment.

Recently, my junior was born. To adapt to the new environment of parenthood, I realized for the first time that I need to build my physical strength. The sense of urgency I felt was different from any previous determination or resolve. Therefore, I have been consistently looking for and engaging in exercises that suit me.

In the struggle to adapt to this new environment, I contemplated the power of will and action without stress. Since everyone will face new environments at some point, I encourage you to apply what I have discovered. The key to having the will and taking action is to “open your senses fully.”

Many people fail at this stage. They look at how others in similar new situations have handled things and try to apply the same methods to themselves. While there are certainly lessons to be learned from others, we each have different characteristics, and our new situations are slightly different as well. Therefore, before investigating similar cases and solutions, it is crucial to fully open our senses to closely observe and think about the new environment.

The reason we stop thinking is due to a “lack of sensory perception” prior to an individual’s “will.” The meaning of “will” is “the desire to achieve something.” To have this desire, we must feel, and feel well without prejudice, to develop good thoughts. Good sensory perception is the starting point for having good will, which in turn can lead to good thoughts.”

목이 곧은 자들

목이 곧은 자들

신생아를 안을 때 주의 해야하는 동작 중에 하나는 ‘목을 지지하는 것’ 입니다.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그냥 안아 들었을 때 머리의 무게로 인해 다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근육이 발달하지 않는 아기에게는 위험하죠. 신생아 시기를 지나 아기는 근육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목에 힘이 들어가고 단단해집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목근육 발달은 인간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입니다. 평생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깐요.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향해서 목을 가누지 못하는 신생아와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대의존을 말씀하십니다.

*어느 어리석은 자의 말과 같이 신생아와 같이 정말 아무것도 안하는 삶을 비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에 힘이 너무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목이 곧은 자들’ 이라고 책망하십니다. 문맥 상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주도하려고 하는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인거 같습니다.(출애굽기, 신명기, 느헤미야…)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요?

아기가 정신과 신체가 점점 자라면서 자아를 발견하고 힘을 키우게 됩니다. 예전에는 밥 먹는 것조차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들이 점점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타인과 거리를 두며 독립을 하게 되죠.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통한 완정한 독립을 향한 열망에 대해 긍휼이 여기시며 궤도 수정을 촉구하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제한된 시간 안에서만 온전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질세계가 절대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착각할때가 많습니다. 어떤 과학적 사실도 우리의 착각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는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허무주의자들과 같은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창조주에 대한 경외한 삶의 태도를 가져보자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