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구두가 주는 미(beauty)

나에게 맞는 구두는 하나가 내 일상을 바꿉니다. 현대인은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면에 발을 붙이고 생활하죠. 맨발일 때도 있고 슬리퍼, 운동화, 축구화 등 다양한 신발을 신기도 합니다. 특히 구두는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캐주얼한 슬립온을 찾아왔습니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슬립온 구두는 저에게도 잘 맞는 패션 아이템입니다.

1902년에 설립된 일본제화주식회사와 1961년 미국 브라운사와의 기술 연계로 탄생한 “리갈 슈즈(Regal Shoes)”의 가죽 구두는 100년이 넘는 일본의 기술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름다운 곡선과 적당한 높이로 신는 이에게 미적 매력을 더해줍니다.

신발은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도구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내•외적 미적 가치를 높여주는 패션 도구로서, 자신에게 맞는 구두를 찾는 재미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Good shoes bring a unique beauty to life

The right pair of shoes can change your daily life. Aside from time spent lying in bed, modern people are constantly connected to the ground. Sometimes we go barefoot, wear slippers, sneakers, or cleats. Among these, dress shoes hold particular significance for those involved in professional life.

I have been searching for a pair of casual slip-on shoes for quite some time. Slip-on shoes, which strike a balance between lightness and weight, are a perfect fashion item for me as well.

“Regal Shoes,” established in 1902 by the Japanese Shoe Company and later refined through a technical partnership with Brown Company in 1961, embodies over a century of Japanese craftsmanship. These leather shoes, with their beautiful curves and ideal height, add an aesthetic charm to the wearer.

Shoes are not merely a means to protect our feet but are essential tools that support our everyday lives. Why not experience the pleasure of finding the right shoes that enhance both your inner and outer aesthetic value?

배움의 시간을 마련해야 할 나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통제할 수 없는 관념이 되어갑니다. 학생 시절에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어떤 사람도 될 수 있었고, 시간이라는 요소로 이루어진 삶을 자신의 감정과 의지로 이끌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감정과 의지는 점점 둔해집니다. 그 대신 젊은 시절에 했던 다양한 활동의 흔적들만이 남게 됩니다. 삶에 깊숙이 새겨진 이 흔적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살’을 재생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내•외적인 감각이 둔해지면서 호기심과 상상력도 함께 잃어가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인생을 자연법칙의 흐름에 맡기면서도 ‘새로운 살’을 재생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아이를 낳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정신없이 바쁘며,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합니다. 자연스레 ‘배움’의 깊이는 얕아지기 마련입니다.

깊이가 없는 인생은 언젠가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에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여 ‘배움’의 흔적을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학생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더 현실적이고 더 다양한 영역에서 배움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데 나이의 제한은 없습니다.

As we age, time increasingly becomes an uncontrollable concept. In our student years, it was easy to begin various activities out of pure curiosity. With determination alone, we could become whoever we wished, leading a life constructed of time through our own emotions and will.

However, as time passes, our emotions and willpower grow dull. Only traces of the various activities from our youth remain. These deeply ingrained marks in life can become obstacles to regenerating “new skin.” As our inner and outer senses dull, we gradually lose curiosity and imagination.

As we age, we must continue to let our lives flow naturally with the laws of nature, while also striving to regenerate this “new skin.” Our lives do not end in this world alone, which is why we must keep learning.

Marriage, building a family, and raising children to create a new community is always busy and demands constant generation of new ideas for survival. Naturally, the depth of “learning” tends to become shallow.

Without depth, our lives are bound to wander at some point. Therefore, we must allocate a certain time in life to rediscover the traces of “learning.” Unlike in our student years, learning now should be more practical and span a wider variety of fields.

There is no age limit to learning.

제자리에 갖다 놓기 – 불쾌감이 주는 유익

일본인 아내와 함께 살면서 변화된 습관 중 하나는 ‘제자리에 되돌려놓기’입니다. 아내는 원래 있던 자리에 물건이 보이지 않으면 나에게 “제자리에 갖다 놔”라고 짜증이 섞인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순간 불쾌한 감정이 솟아오르지만, 냉정함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지 라며 투덜거리며 아내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불쾌감을 느끼고 나서야 나에게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간에 나와 다른 습관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하게 되죠. 그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루틴과 맞지 않음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불쾌감은 국가적 문화에서 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 경험에 의해 유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사회에 속하며 살아가는 한 불쾌감을 안 느끼고 생활할 수는 없습니다.

불쾌감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이기에 그 자체가 좋다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불쾌감이 주는 유익도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잔혹한 범죄를 뉴스를 통해 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끼고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며 유사한 상황을 피하려는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불쾌감을 유발하는 상황들을 예방하려는 습관이 생길 가능성이 있죠.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사람들 간의 교류에서 느끼는 감정 중 하나인 “불쾌감”에 대해 너무 “선(善)”하다고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쾌감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인간의 본능을 기반으로 여러 형태로 삶을 만들어가지만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 몰두된 “자신”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생각해 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익숙한 것에 안정감을 느끼고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고방식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변화해야 할 때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좋은 능력들을 펼쳐보기도 전에 사라져갑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자연의 순리처럼 지속적으로 변해갈 때 우리는 더욱 자신을 알아가는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물론 변화는 아픔을 동반합니다.

Putting Things Back in Place – The Benefit of Discomfort

One of the habits I developed while living with my Japanese wife is ‘putting things back where they belong‘. Whenever something was not in its original place, my wife would tell me, “Put it back where it was,” in a slightly annoyed tone. Hearing those words would stir up a feeling of discomfort, but after calming myself and thinking it through, I would grumble, “Well, she’s right,” and comply. After experiencing and then suppressing that discomfort a few times, I naturally developed the habit of putting things back in their place.

We interact with countless people in our daily lives. Whether at home or at work, we live with people who have different habits from our own. At such times, we naturally feel discomfort when things don’t match our routines. This discomfort may stem from cultural differences or be triggered by personal experiences. Wherever we are, as long as we are part of society, it’s impossible to live without ever feeling discomfort.

Discomfort is a natural human emotion, so we cannot judge it as either good or bad. In fact, discomfort can be beneficial. For instance, when we hear about a heinous crime on the news, most people feel discomfort, which raises their awareness of the crime and prompts them to avoid similar situations. This may lead to habits aimed at preventing situations that cause discomfort.

Though this is an extreme example, the point I want to emphasize is that we should not believe that the emotion of “discomfort” we feel when interacting with others is inherently “good.” There are situations where we should see discomfort as “an opportunity to change ourselves.” Our emotions, based on human instincts, shape our lives in various ways, but they can also lead to incorrect judgments at times. That’s why it’s important to develop the habit of stepping back and reflecting on ourselves, detached from the situation at hand.

It’s natural to feel a sense of stability with the familiar and resistance toward change. However, if we don’t change when necessary, our potential to develop good abilities may vanish before we even have a chance to show them. Like the natural order where flowers bloom and bear fruit, continuously evolving helps us understand ourselves better. Of course, change comes with pain.

그에게도 일상이 있었다.

백석이라는 시인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시인일 것입니다. 분단 이후 북한에서 여생을 보낸 시인이기에, 독립 이후 남한 사회에서는 그의 언급을 피했지만, 월북 문인의 해방 이전 작품에 대한 공식 해금 조치가 이루어진 1988년부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백석의 시집 <사슴>(1936)을 갖고 싶어 했을 만큼, 백석은 시인들 사이에서도 존경받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거장인 그 또한 한 개인에 불과했습니다. 백석 시인에게도 거대한 역사 속에서 자신의 관점을 문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동시에 일상이 존재했습니다. 그는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휴일의 여유를 즐기며, 누군가를 흠모했고, 우리와 같은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노루

산골에서는 집터를 츠고 달궤를 닦고
보름달 아래서 노루고기를 먹었다.

-백석

백석의 언어는 그의 삶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삶에서 얻은 감정을 세련된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했죠. 비가시적 가치를 언어로 표현하려 할 때 비록 제약을 느끼고 자유롭지 못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말로 충실히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독자들은 그의 친절함과 감정에 공감하며, 그의 시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의 인물을 상상할 때, 그 시대의 정신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인물상을 그리게 됩니다. 개인은 사회와 연결되어 있기에 그러한 추론은 타당하지만, 동시에 그들도 현재의 우리처럼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한 개인”이었습니다. 백석과 같은 식민지 시대 인물을 살펴볼 때, 시대적 정신과 개인의 삶을 균형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욱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The poet “Baek Seok” is likely someone that every South Korean has heard of at least once. As a poet who spent the rest of his life in North Korea after the division of the peninsula, his name was avoided in South Korean society following independence. However, starting from 1988, when the ban on the works of North Korean writers before their defection was officially lifted, Baek Seok began to regain attention.

It’s known that poet Yun Dong-ju wanted to own Baek Seok’s poetry collection Deer (1936), which shows how highly regarded Baek Seok was among fellow poets. Yet, despite being a literary giant of great talent, he was also just an individual. Like any of us, Baek Seok had a daily life intertwined with the larger historical context in which he lived. He was loved by his family, enjoyed leisurely holidays, admired others, and likely had dreams similar to our own.

His language was deeply connected to his life, conveying emotions drawn from his experiences with remarkable sophistication. Even when he may have felt the limitations and lack of freedom in expressing intangible values through language, he remained committed to telling his story in his own words. Readers, in turn, empathize with his warmth and emotions, experiencing a connection that transcends time and space.

When we imagine historical figures, we often construct a detailed image based on the spirit of their era. Since individuals are connected to society, such reasoning makes sense. However, they were also “individuals” like us, experiencing complex emotions and living each day. When examining figures like Baek Seok, from the colonial period, it is important to balance the consideration of both the spirit of the times and the individual’s personal life. This allows us to feel richer emotions in understanding them.

어느 선장의 위로

하루 종일 인간의 마음은 바다와 같습니다. 깊은 바다 속 해류와 해변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망망대해 위 길 잃은 한 척의 배의 선장이 불안을 느끼면, 성경 말씀에 귀 기울여 창조주가 주는 평안에 마음을 기댑니다.

The human heart is like the sea throughout the day, constantly moving like the currents deep within the ocean and the waves along the shore. When the captain of a lost ship feels anxious on the vast open sea, he listens to the words of Scripture and rests his heart in the peace given by the Cre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