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정비 시간

토요일 아침입니다. 많은 회사원들에게는 회사를 쉬고 개인 정비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첫날이죠. 누군가는 취미 생활에 몰두하고, 부모들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또 다른 이들은 데이트를 하며 주말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주말의 즐거움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러한 소중한 순간들이 쌓여 언젠가는 주말뿐 아니라 인생 전체가 진정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욕망에 휩쓸리지 말고,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길 기도합니다.

It’s Saturday morning. For many office workers, it’s a precious day to rest from work and focus on personal care. Some immerse themselves in hobbies, parents spend time with their families, and others enjoy the pleasure of dating during the weekend.

The joy of the weekend is short but leaves a powerful impression. I believe that these cherished moments will eventually build a life filled with genuine happiness, not just on weekends but throughout. So today, I pray that you won’t be swept away by fleeting desires but instead experience true joy.

土曜日の朝です。多くの会社員にとっては、仕事を休んで自分を整える大切な一日です。趣味に没頭する人もいれば、親たちは家族と時間を過ごし、またデートを楽しむ人もいるでしょう。

週末の楽しみは短いですが、強烈な印象を残します。このような貴重な瞬間が積み重なり、いずれ週末だけでなく、人生全体が真の喜びで満たされると信じています。だからこそ、今日も欲望に流されず、本当の喜びを感じられることを祈っています。

성경의 힘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삶은 단순해집니다. 왜냐하면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인 삶에서 확고한 방침과 우선순위가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인간의 지혜로는 내일의 일조차 예측할 수 없기에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늘 가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존재하고 변하지 않기에, 우리의 삶을 그 말씀에 맡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좋고 나쁘냐의 관점이 아닙니다.

The Power of the Bible

When we believe in God’s Word, life becomes simple. This is because having a clear principle and priority helps us navigate through a life filled with countless choices.

With our limited human wisdom, we cannot even predict tomorrow. As a result, the answer to the question, “What should I do today?” is always subject to change. However, since God’s Word is eternal and unchanging, we can entrust our lives to it.

This is a matter of priorities, not a question of what is good or bad.

聖書の力

神様の御言葉を信じると、人生はシンプルになります。それは、毎瞬間が選択の連続である人生において、確固たる指針と優先順位が定まるからです。

限られた人間の知恵では、明日のことさえ予測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そのため、「今日は何をすべきか?」という問いの答えは常に変わり得るものです。しかし、神様の御言葉は永遠に存在し、変わることがないため、私たちはその御言葉に人生を委ねることができます。

これは優先順位の問題であり、何が良いか悪いかという観点ではありません。

그리스도인은 적극적인 삶의 태도에서 신앙의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초대교회 시절 안디옥 교회의 사람들을 믿지 않는 이들이 부르던 별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삶의 목표와 방식이 다른, 다소 독특한 집단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특정한 예배 형식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다른 삶의 가치관과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기보다 사랑을 실천하며, 자신의 유익보다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구체적인 삶의 행동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삶에 대한 그들의 적극적인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강한 신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적극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 그들에게 부어진 성령은 강력한 믿음과 공동체를 형성하게 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신앙 공동체로 이어졌습니다.

교회는 특정한 예배를 드리고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하지만 신앙 공동체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개개인의 신앙 회복입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건강한 믿음이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Christians embody the true essence of faith through a proactive approach to life.

The term “Christian” was originally a nickname given by non-believers to the members of the Antioch Church in the early church era. It referred to a peculiar group whose life goals and ways differed from their own. In other words, Christians lived a lifestyle distinctly different from that of non-believers.

They were not called “Christians” because of any specific worship practices. Rather, the term was derived from their unique values and attitudes toward life. Their actions—prioritizing love over material wealth and seeking the benefit of others rather than their own—were difficult for others to comprehend.

How, then, were Christians able to hold such values? Their proactive attitude toward life stemmed from a strong faith in Jesus Christ as their Lord. Through God’s active and supernatural miracles, the Holy Spirit was poured out upon believers, forming strong faith and communities, which naturally gave rise to faith-based communities.

A church refers to a community that gathers for worship. However, the essence of a faith community lies in the proactive attitude of those who believe in Jesus Christ. The most crucial task today is the restoration of individual faith. When this happens, we can expect to see a vibrant and healthy faith reflected in every area of our lives.

クリスチャンは積極的な生き方を通じて信仰の真価を発揮します。

「クリスチャン」という言葉は、初代教会時代、アンティオキア教会の人々を指して、信じていない人々がつけたあだ名でした。彼らの人生の目標や生き方が自分たちとは異なる、少し風変わりな集団を指す表現だったのです。つまり、クリスチャンは信じない人々とは異なる独自のライフスタイルを持っていました。

特定の礼拝形式を持っていたから「クリスチャン」と呼ばれたわけではないでしょう。むしろ、彼らの異なる人生観や態度を見てそう呼ばれたのです。物質的な豊かさを求めるのではなく愛を実践し、自分の利益ではなく他者の利益を求める具体的な行動は、当時の人々には理解しがたいものでした。

では、クリスチャンはどうして世間と異なる価値観を持つことができたのでしょうか? 彼らの積極的な生き方は、イエス・キリストを主として信じる強い信仰から生まれました。神の積極的で超自然的な奇跡によって信じる者たちに注がれた聖霊は、強い信仰と共同体を形成させ、それが自然に信仰共同体を生み出したのです。

教会とは、特定の礼拝を行い集まる共同体を指します。しかし、信仰共同体の本質は、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人々の積極的な生き方から自然に生まれる現象です。今、最も必要なのは個々人の信仰を回復することです。それによって、私たちの人生のあらゆる分野で健全な信仰が現れることを期待しています。

목적 없는 자기계발의 한계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느 서점을 가더라도 자기계발서 코너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고자 동기부여의 계기를 책에서 찾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을 연마하고 변화하려는 자세는 자기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본질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 외부에 있는 미학적 가치’를 위한 자기계발은 어느 순간 의욕을 잃고 포기하기 쉽습니다. 즉,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기계발은 중도에 멈추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마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는 오래 걸을 수 없는 원리와 같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을 꾸려나갑니다. 생존과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감정적, 이성적 동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위협이 줄어든 반면,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내면이 아닌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자극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공유되며 동경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이를 모방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삶’을 따라하려다 자신의 삶을 개조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계발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결국 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과 유사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삶을 참고하며,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The Limits of Aimless Self-Development

In both Korea and Japan, it’s common to see people gathering in the self-help sections of bookstores. Most of them seem to be seeking a source of motivation from books to bring about change in their lives. The attitude of refining and transforming oneself is essential and fundamental to personal growth.

However, self-development pursued for “external aesthetic values” often leads to losing motivation and giving up midway. In other words, self-development that doesn’t consider one’s own nature is more likely to end in failure—much like how wearing ill-fitting shoes makes it impossible to walk long distances.

Humans are driven by instinct to navigate life. The desire for survival and beauty serves as significant emotional and rational motivators. In today’s world, threats to survival have decreased, but the instinctual drive for beauty has grown stronger.

People have begun to seek beauty “outside themselves,” stimulated by external sources rather than inner reflection. As they admire the glamorous lives shared by others, they aspire to imitate “their lives” and attempt to remodel “their own lives.”

This kind of motivation for self-development might yield short-term results but often leads to abandonment in the long run. To overcome this, we need to revise the order of priorities. First, we should take time to understand ourselves, then look to the lives of those who have lived the kind of life we aspire to. By doing so, we can transform ourselves in a way that suits our personal style. When we shift this order, we can truly live a life that is authentic to ourselves.

目的のない自己啓発の限界

韓国でも日本でも、どの書店に行っても自己啓発書のコーナーにはいつも人が集まっているのを見かけます。多くの人は、自分の人生に変化をもたらすため、書籍から動機づけのきっかけを見つけようとしているようです。自分を鍛え、変化しようとする姿勢は、自己成長において非常に重要で本質的な態度だからです。

しかし、「自分の外にある美的価値」を追求するための自己啓発は、いつの間にか意欲を失い、途中で諦めてしまうことが多いのです。つまり、自分に合わない自己啓発は途中で挫折する可能性が高いのです。それは、足に合わない靴を履いて長時間歩けないのと同じ原理です。

人間は本能に従って生きています。生存と美しさは、人間にとって重要な感情的・理性的な動機づけとなります。現代社会では、生存本能を刺激する脅威は減少する一方で、美しさに対する本能はますます強まっています。

人々は、社会の流れの中で、自分の内面ではなく感覚器官を通じて外部の刺激から美しさを見つけ始めました。華やかな生活を送る人々の姿が共有され、それに憧れを抱き、「彼らの人生」を模倣しようとします。そして、「自分の人生」を改造しようとするのです。

このような自己啓発の動機づけは短期的には効果があるかもしれませんが、最終的には放棄してしまうことが多いのです。この順序を修正する必要があります。まずは自分を理解する時間を持ち、自分が目指す人生を歩んでいる先輩たちの人生を参考にしながら、自分のスタイルに合った変化を目指すべきです。このように順序を見直すことで、真の自分らしい人生を歩むことができるのです。

일상을 표현한 시인 타니카와 슌타로 별세

타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郎) 씨가 92세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일상의 진부함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표현하는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담백한 시어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때로는 인간의 솔직한 본성을 은유로 드러내어 양심을 일깨우기도 했습니다. 타니카와 씨는 ‘인간을 표현하는 예술가’라는 직업의 소명을 온전히 보여준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정신에서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Shuntaro Tanikawa (aged 92) has passed away.

He was a poet who captured the ordinariness of daily life with remarkable simplicity and sincerity. His plain yet profound poetic expressions resonated deeply with many, and at times, his metaphors unveiled the raw truth of human nature, pricking at the conscience. Tanikawa embodied the calling of being an “artist who expresses humanity.” We have much to learn from his enduring spir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