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 가까이 가려다 실명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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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났던 시기의 대한민국은 일정 부분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있었고, 시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꿈꿀 수 있었으며, 개인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깊은 신앙 덕분에, 지구 반대편에 가까운 극동 아시아 대한민국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 자유, 신앙의 자유, 그리고 사회적 자유 속에서 태어난 것은 제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이를 ‘운명’이라 하고, 누군가는 ‘우연’이라 부르지만, 제게는 그것도 하나의 예정된 은혜였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이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억압과 폭력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운명은 기독교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

교회는 진리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으로 드러내는 유기적인 공동체입니다. 진리는 역사가들의 생생한 증언과 성경을 통해 이미 검증되고 확증되어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각 교회에 보낸 편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미 선포되었음을 분명히 말합니다. 이 확증된 복음의 진리는 성도들의 삶 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굳건히 지켜져야 하며, 동시에 복음의 열매는 인간이 정해놓은 경계를 넘어, 진리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까지 전해져야 할 사명을 품고 있습니다.

신앙과 삶은 함께 갑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앙과 함께 움직입니다. 더욱 복잡하고 세련된 신학적 체계를 쌓기보다, 각 개인이 성경을 통해 받은 진리의 목적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편견의 벽을 복음으로 허물어갈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위를 돌아보게 됩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지 않고, 이웃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이 만든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계시에서 비롯된 내면의 힘에 의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식은 점차 개인과 가족을 넘어서 공동체와 인류 전체를 향해 넓어집니다. 이방인을 위해 죽음을 각오했던 예수님의 사도들과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그 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억압받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폭력과 억압이 난무하는 사회에 태어난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13:3)

먼저 우리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개인의 신앙을 깊이 있게 다져야 합니다. 믿음의 열매가 삶에서 맺히기 시작하면, 각자의 재능과 기질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단순하고 본질적인 복음의 원리보다, 시스템의 부재나 복음의 ‘불완전함’을 문제 삼습니다. 그리고 결국 복음의 목적이 아닌 ‘진리의 빛’만을 추구하다가, 이웃을 바라보는 눈을 잃고 맙니다. 이제는 세련된 교리나 시대에 맞춘 교회 시스템 개발에만 몰두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는 반드시 삶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복음은 삶 속에서 열매 맺지 않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곧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져야 하며, 그것은 반드시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진리의 빛을 향해 나아가되, 그 빛을 홀로 소유하려다 주위를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복음이 말하는 본질을 다시금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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