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의 분쟁으로 인한 개인의 희생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동생을 데리고 일본에 건너왔다. 조선에는 먹고 사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족에 깊은 애착을 가진 아버지의 생사를 건 결단이었다. 나무가 없는 산을 바라보니 여기가 일본인지 조선인지 구분이 안 되었지만 광부로서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어둠컴컴한 동굴에 매일 들어간다. 우린 행복했다. 매달 나오는 급료, 함께 고생하는 가족들이 조그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그 순간이 조선에서는 꿈꿀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실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패전했다고 한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우리 고향 함경북도 청진시에는 갈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이 조금 흘러 조선이 두 개의 나라로 나눠졌다고 한다. 일본은 영주권을 주는 대신 국적을 정하라고 한다. 한국인가? 북한인가? 

-위의 일화는 픽션입니다.

My father and mother brought my younger sibling and me to Japan. Life in Joseon was too difficult. It was a life-or-death decision by my father, who had a deep attachment to his family. Looking at the mountains without trees, it was hard to tell if this was Japan or Joseon, but as a miner, my father went into dark caves every day for his family. We were happy. The monthly salary and the moments of our small community struggling together were something we could never have dreamed of in Joseon, making it all the more real.
Then one day, they said Japan had lost the war. They said we couldn't go back to our homeland. They said we couldn't go back to our hometown of Chongjin City in North Hamgyong Province. A little time passed, and they said Joseon had been divided into two countries. Japan offered us permanent residency but told us to choose our nationality. South Korea? North Korea?

-The above story is a work of fiction.

재일 조선인의 삶은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희생으로 덮인 인생이었습니다. 재일 조선인은 현재 어느 나라에 속하여 있는지 상관없이 당시의 국가 권력들 간의 희생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재일 조선인의 문제는 문명국가인 한국 정부가 일본에서 인간으로써 누려야할 자유를 보장 받을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