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사고파는 물건과는 다른 차원의 관념입니다.

소유권은 인간이 누리는 기본 권리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이 정당한 노동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토지와 건물을 구입하는 것은 문명사회에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인생 중 하나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자기 집을 사는 것이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아주 복잡해서 문제를 단순화해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저번 달에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C라는 밭을 샀습니다. C밭은 A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유산으로 받은 땅이었습니다. A의 아버지는 50년 전 자신의 아버지의 친구에게 구입한 땅이었습니다….

위의 예에서 토지는 개인간의 계약을 통해 주고받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토지매매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계약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토지를 물건을 사고파는 상품과 같은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토지와 소유권은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초콜릿과 다릅니다.

위에서 든 예처럼 토지는 현재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먼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종부세, 국토보유세 등 단지 현재의 국민들에게 뽑힌 정치 대변자들의 공약들은 너무 근시안적인 대책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안들이 소유에 대한 애착을 없애버리는 관습을 형성시키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당장에는 아무렇지 않지만 언젠가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그때는 이미 손을 쓰기가 늦을 것입니다.

토지는 표면적으로 개인 간의 계약에 의해서 매매됩니다. 동시에 토지는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값진 재산입니다. 정치인들의 토지에 대한 근시안적 관점이 부산스러운 숫자 정책으로 치우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토지 소유권을 찾아나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Land is a concept of a different dimension than buying and selling goods.ㅔ

In a civilized society, buying land and buildings through legitimate labor is a life experience that everyone should be able to enjoy. However, in today’s Korean society, owning a home has become an unattainable dream. The reasons are very complex, and simplifying the problem for a quick solution is not feasible.

Last month, person A bought field C from person B. Field C was inherited by person A from his father. Person A’s father had purchased the land from his friend 50 years ago…

From the example above, we can see that the land we dream of is exchanged through contracts. The current land transactions have been made through numerous agreements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We sometimes mistakenly treat land like a commodity that can be bought and sold like products in a store.

Land and ownership are different from chocolate that can be bought at a convenience store.

As illustrated in the example, land is not something newly created but a result that has been passed down from the distant past.

Policies like comprehensive real estate tax and land holding tax, which are promises made by currently elected political representatives, are too short-sighted. These alternatives are forming customs that erode attachment to ownership. While these issues might seem trivial now, they will eventually become apparent, and by then it might be too late to address them.

Land is superficially traded through contracts between individuals. At the same time, land is a valuable asset passed down from ancestors. I believe that the fundamental problem lies in politicians’ short-sighted views on land, which are skewed by hasty numerical policies. However, I also trust that there are no foolish people who would seek to reclaim past land ownership.

2024 도쿄도지사 선거 [4]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보여준 정적인 일본 정치 문화.

일본의 정치문화는 한국보다는 정적이다. 이러한 문화는 일본인들의 천성적인 기질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후천적인 경험으로부터 얻은 시민들의 지혜에서 나온 방책이다.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는 일본의 정적인 정치 문화를 축약해서 보여준 계기였다. 국정 선거가 아니기에 모든 언론사가 선거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후보들의 진정성 있는 정치적 주장을 듣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후보에 대한 불명확한 지식을 가진 시민들은 어떤 후보를 선택할까? 당연히 어느 지방의 시장으로 있었던 젊은 정치인은 아닐 것이다. 보다 안정감 있고 정치적 경험이 있는 후보자로 표가 집중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이번 선거도 뻔한 결과가 되었다.

일본의 정적인 정치 문화는 결코 시민들의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1960년대는 전쟁과 권위주의에 맞서 대학생들의 격한 데모도 있었던 일본이었다. 결코 선천적 정치적 기질이 아니다. 정치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개인의 문제와 즐거움에 집중하도록 구조적으로 정교하게 형성된 사회적 관습에 의한 현상이다.

이번 도지사 선거에는 분명히 정적으로 만드는 주요 액터들이 눈에 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정의 수장이 될 후보에 대한 정보보다 오오타니의 몇 호 홈런에 대한 소식으로 화면을 채우는 그 누군가의 전략일 수도 있다.


Japan’s Political Culture is More Static than Korea’s

Japan’s political culture is more static than Korea’s. This culture arises not from the inherent temperament of the Japanese people, but from the wisdom gained from their postnatal experiences.

The recent Tokyo gubernatorial election was a prime example of Japan’s static political culture. Since it wasn’t a national election, it was natural for the media not to cover every detail of the election. However, it was insufficient for hearing the candidates’ sincere political claims.

What kind of candidate would citizens with vague knowledge about the candidates choose? It certainly wouldn’t be a young politician who was once a mayor of some region. Votes would naturally gravitate towards a candidate who is more stable and has political experience. As expected, this election yielded a predictable result.

Japan’s static political culture is not due to the temperament of its citizens. In the 1960s, Japan experienced intense student protests against war and authoritarianism. It is not an innate political temperament. It is a phenomenon resulting from a socially sophisticated convention that structures society to focus on personal issues and pleasures rather than political interest.

The recent gubernatorial election clearly showcased the major actors who contribute to this static nature. It might be a strategy by some to fill the screens with news of Ohtani’s home runs rather than information about the candidate who will become the administrative head directly impacting their lives.

2024 도쿄도지사 선거 [3]

2024년 도쿄도지사 선겨 결과입니다.

너무 뻔한 선거 결과

도쿄도지사 코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세 번째 도지사에 연임한다. 누구나 예상한 선거 결과였기에 당선 속보가 속보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정해진 결과인 마냥 당선 사실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일본의 수도의 행정 수장을 뽑는 도지사 선거는 껍데기만 남은 정치적 이벤트로 변질되어간다. 시민사회의 여러 의제를 논하기에는 너무 복잡해진 오늘날, 민주주의 본질보다는 기업 조직의 “리스크 관리”의 측면에서 행정 수장을 뽑은 건 아닌지 우려된다.

선거 전부터 당선자가 결정되어 버린 것 같은 이번 도지사 선거는 개인의 정치적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일본의 정치 문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도쿄도지사 선거 투표율 33.07퍼센트


2024 Tokyo Governor Election [3]

An All-Too-Predictable Election Result

Tokyo Governor Yuriko Koike (小池百合子) wins her third term. The election result was so expected that the breaking news felt anything but. It seemed like a predetermined outcome, and people were just hearing it as a formality.

The gubernatorial election, a democratic process to elect the administrative head of Japan’s capital, is turning into a hollow political event. In today’s complex society, where discussing various civic issues is increasingly challenging, there is a concern that the election is more about “risk management” from a corporate perspective rather than the essence of democracy.

The gubernatorial election, where the winner seemed predetermined even before the election, exemplifies Japan’s political culture, where individuals often do not express their political opinions.

*Tokyo gubernatorial election voter turnout: 33.07%

우리의 본보기(롤모델)은 누구인가?

한번씩 나 자신에게

00와 같은 삶을 살고 싶은가?

를 물어보곤 했습니다. 나이나 상황에 따라 그 대상과 열망의 정도는 변해왔습니다. 그러한 이상(理想)의 사람이 나타나면 동경하게 되고 나의 행동과 말투, 습관 등 일상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그 대상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를 모방하며 살고 있나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대상을 동경하고 그와 똑같은 삶을 살고 싶도록 유도하나요?

교육부가 매년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래 희망을 조사한 통계를 보면 특정 직업에 관한 선호도 조사에 그칩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원하는 직업을 동경하고 모방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생각합니다.(2023년 고등학생을 기준으로 1위 교사, 2위 간호사, 3위 생명과학자)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시간을 할애하고 재원을 투자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분야는 교육부에서 조사하는 특정 직업의 영역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직업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제적 기반을 위해 해야 하는 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누구를 본보기로 삼고 있는가는 통계로는 알 수 없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숫자의 합보다는 실제로 우리 사회의 관습과 상식이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 개개인의 모방 대상을 어느 정도는 어렴풋이 알 때도 있습니다. 돈, 학력 등의 물질적 가치관에 가치를 두는 사회적 풍조가 한 예입니다.

물론 사회·경제의 구조적 결과물로서 물질의 추구는 자연스러운 가치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물질을추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개개인의 판단 능력, 즉 인식론적 관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 중 하나인 모방에 대해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Who Is Our Role Model Today?

Every now and then, I ask myself,

“Do I want to live a life like [someone]?”

Depending on my age and situation, the target and level of admiration have changed. When such an ideal person appears, I notice that my actions, speech, habits, and daily behaviors naturally start to emulate that person.

Who are we imitating in our lives today? What makes us admire someone and want to live the same life as them?

According to the annual survey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on the future dreams of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the survey only reflects preferences for specific occupations. I believe it is rare for children to actually admire and want to emulate these occupations. (In 2023, the top choices among high school students were: 1. Teacher, 2. Nurse, 3. Life Scientist)

However, I notice that the areas in which many children invest their time, resources, and express themselves are quite different from the specific occupations survey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This is because our view of jobs is limited to “something we have to do to earn a living to support what we truly love to do.”

We cannot determine who society views as role models through statistics alone; there are limits to this approach. Rather than the sum of numbers, observing the changes in our societal customs and common sense can give us a vague idea of individuals’ role models. A focus on material values such as money and educational background is one example of this.

Certainly, the pursuit of material goods as a result of societal and economic structures is a natural value. However, the reason for this pursuit needs to be evaluated from an individual’s cognitive perspective. It seems to be the right time to reflect on who and what we should be emulating, considering imitation is a fundamental human capability.

2024도쿄도지사 선거[2]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 포스터입니다.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 포스터 사진, Photo of the 2024 Tokyo Gubernatorial Election Posters]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후보들의 진중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의 행정 수장을 뽑는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후보자들의 정보는 어디에 꼭꼭 숨겨놓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정책과 비전을 발신하기보다는 전화를 통해 “자신을 뽑아주세요”라는 자동 음성만 들립니다.

“열어보자, 새로운 도쿄, 새로운 미래” (蓮舫)
“도쿄를 움직여 보자” (石丸)
“앞으로도 도민을 위해, 도민과 함께” (小池)…

아직 종이 문화가 남아 있는 일본에서 선거 포스터는 일본인들의 인식에 어떤 정보를 각인시키는 데 유효한 수단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진정성도 구체성도 없는 바람에 날릴 언어로 낭비하고 있는 인상은 저만 느끼는 것일까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진정으로 전달하고 싶다면 이러한 태도는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There is a lack of seriousness among the candidates in the 2024 Tokyo gubernatorial election. This is despite it being an important political event to elect the administrative head of Tokyo, the capital of Japan. It’s hard to find any information about the candidates. Instead of conveying their policies and visions to the citizens, we only hear automated messages over the phone asking for votes.

“Open up. New Tokyo, New Future” (Renho)
“Let’s Move Tokyo” (Ishimaru)
“For the citizens, together with the citizens” (Koike)…

In Japan, where the culture of paper still remains, election posters are one of the effective means to engrave information in the minds of Japanese people. Am I the only one who feels that this is a wasted opportunity to communicate future policy directions with words that are neither sincere nor concrete? If someone truly wanted to convey their opinion, this kind of attitude would not be s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