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읽어보자

에드먼드 버트의 초기 작품인 “숭고와 미“를 함께 읽어보자

상식에 대한 도전

어떤 사람에게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의견에 대해 “그 사실은 틀린 사실이야”라고 말한다면, 거부를 당한 것 같은 사실로 인해 당사자 내면은 감정 방어 시스템으로부터 불쾌함을 발동할 것입니다. 불쾌감은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모으고 발화자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긍정적인 방향으로도 인도합니다. 버크는 시민사회의 개혁을 위해 당시 철학자들 사이에서 화제였던 논제 중 “숭고함”에 대한 상식에 대해 도전하여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숭고와 아름다움이 자주 혼동되고 있으며 서로 매우 다른 사물들이나 때로는 정반대되는 성질을 지닌 사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간파하였다.”

왜 “숭고함”일까? 그 이유는 기회가 있으면 다른 글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할 초점은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던 철학적 사실에 대해 반기를 든 버크의 주장입니다.

18세기라는 시대는 사람들의 세계관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입니다. 오랫동안 교회가 주장하는 인간관과 사회관이 힘을 잃어버리는 시대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기존에 상식이었던 인생의 중요한 진실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버크는 기존의 인간을 고찰할 때 자주 사용되었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사용하여 인간의 새로운 사실을 밝히려고 시도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버크는 새로운 인간관을 정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지적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원인의 연구를 통해서는 우리의 정신이 활짝 열어젖혀지고 넓어질 것이고, 이 연구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러한 노력에는 분명히 대가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버크는 왜 미학에 관한 이론서를 썼는지는 명확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론에 모순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조차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거대한 지적 세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연구를 추가함으로 조금이나마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죠.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숭고와 미]를 쓴 의도를 명확히 함으로 저자가 의도하지 않는 잘못된 해석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버크의 주장이 기존의 상식과 얼마나 다른지 함께 살펴보면서 사람들의 상식을 어떻게 깨우치는지 버크의 논법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우리 삶에도 깨어야 할 상식이 있는지 고찰해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습니다.


[Introduction] Let’s Read “A Philosophical Inquiry into the Origin of Our Ideas of the Sublime and Beautiful”

challenge to common sense

If you tell someone, “That fact is incorrect” about a fact or opinion everyone naturally accepts, the recipient’s inner emotional defense system will trigger discomfort due to the apparent rejection. Discomfort is a negative emotion, but it can attract attention and lead people to listen to the speaker’s opinion in a positive direction. Burke gained significant attention by challenging the common sense regarding “sublimity,” a topic of interest among philosophers of his time, as a means of reforming civil society.

“The author perceived that the sublime and the beautiful are often confused and indiscriminately applied to very different or even opposite things.”

Why “sublimity”? The reason will be explained in another article if given the opportunity. Today, we will focus on Burke’s argument, which challenged firmly held philosophical facts.

The 18th century was a period of rapid change in people’s worldviews and a time of significant social transformation. It was also a time when the church’s long-held views on humanity and society were losing power. Consequently, the important truths of life that were once common sense began to show cracks. Against this backdrop, Burke attempted to reveal new truths about humanity using the frequently employed concepts of “sublimity” and “beauty.”

It should not be misunderstood that Burke was trying to define a new concept of humanity. He was aware of the intellectual limits of humans.

“Through the study of physical causes, our minds will be opened and expanded, and whether this study succeeds or fails, such efforts will undoubtedly have a reward.”

The reason Burke wrote a theoretical book on aesthetics is clear. He discovered contradictions in the theories about humans and society that he knew. Although he himself was not entirely certain, he hoped that adding his research to the vast flow of intellectual thought would slightly improve our understanding of humanity.

Before diving into the content, clarifying the intent behind writing [The Sublime and Beautiful] is crucial to avoid unintended misinterpretations by the author.

Let’s explore how Burke’s arguments differ from existing common sense and how he awakens people’s common sense. This can also be an opportunity to consider whether there are common senses in our current lives that need to be awakened.

[BR] 무기여 잘 있거라

헤밍웨이가 보는 세계를 옅보자.

쿨해 보이는 모습 뒤에는 어둠이 모든 빛을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결국은 모두를 죽인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잠시 머물게 하지만 결국은 죽인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인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가 바라본 세계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순간에서 얻은 진실한 냉소가 섞여 처참했습니다.

인간은 언젠간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진실 중 하나이죠. 그러한 진실 앞에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영위할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통해 우리도 인생을 한번 고찰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The Fact Behind the Cool Appearance: Darkness Absorbs All Light

But in the end, it kills them all. That is a clear fact. It keeps you for a while, but in the end, it kills you.

The way we see the world varies from person to person. The world seen through Hemingway’s eyes was a bleak mix of genuine cynicism, drawn from the worst moments one could endure.

Humans will inevitably face death. Death is one of the unavoidable truths for mankind. How we live our lives in the face of this truth is up to each of us. Through “A Farewell to Arms,” we can take a moment to reflect on life as well.

에드먼드 버크는 누구인가?

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누구인가?

직사각형 공간 속 긴 의자가 대립하듯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정렬된 의자는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작은 빈틈도 상대방 진영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한 단결함을 보여주듯이. 이렇게 언설이 교착되는 이 공간은 대영국제국의 의회이다. 누가 봐도 불편한 긴 의자와 딱 붙어 앉아 있는 의원들 간의 거리. 오로지 상대방의 언어와 논리에 집중하는 순간. 그 순간을 가장 잘 활용한 정치가는 에드먼드 버크가 아닐까?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이 가장 번영한 시기에 휘그당(야당)의 대표 연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의견(opinion)에 열정을 듬뿍 담아 상대방을 설득해 갔다. 인도 식민지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총독을 비난한다든지, 합리적이지 않았던 미국 식민지 세금 인상에 반대한다든지 그는 옳지 못한 일에 자유롭게 의견을 주장했다.

가장 알려진 의견은 도버 해협을 맞닥뜨리고 오랫동안 영국과 대립 관계에 있었던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우리에게는 지금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과 평화의 상징이었던 프랑스혁명에 대한 코멘트였다. 그는 그의 사상을 확실한 경험에 의거해 자유롭게 논했다.

그의 주장은 의회의 연설과 출판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성의 힘을 강조한 철학자들이 많은 프랑스에서 가장 감정적인 혁명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한 혁명의 과정들을 지켜본 버크는 프랑스 혁명이 결코 혁명 세력의 이상적인 사회를 구축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프랑스 혁명 세력이 추구한 시민의 자유는 이성의 울타리를 벗어난 감정의 표출의 한 형태였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이 영국에 건너오는 것을 대단히 경계했다. 그래서 프랑스혁명 발발 바로 다음 해에 [프랑스 혁명의 성찰]을 출판한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가 누구인가? 라고 질문하면 보통은 특정 원리에 집착하는 보수주의자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현 영국의 보수당이 그렇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한 경위도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어떠한 확고한 진리를 고수하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보편적 원리를 끊임없이 적용하고 고찰한 흔적들이 보인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보편적 원리와 현실을 구분할 줄 알고 좀 더 보편적 원리에 가까워지도록 연구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모습일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의 주장에 관해 그 내용에 주목하지 않는다. 정치, 외교, 문화 등을 대하는 그의 자유주의적 태도에 흥미를 가진다. 그러한 삶의 태도와 사고를 키웠던 젊은 버크의 작품들을 읽어간다. 그의 사상이 서양에서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공감이 되는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한 모습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의 버크를 고찰하는 것은 동양의 시민사회의 성숙을 위한 사상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Rectangular spaces with long benches arranged opposite each other are neatly aligned. The aligned benches are connected in a row, as if to show unity, leaving no small gaps to the opposing side. This space, where rhetoric is locked in battle, is the Parliament of the British Empire. The uncomfortable long benches and the close proximity of the members, focusing solely on the opponent’s language and logic. The politician who utilized these moments most effectively was Edmund Burke.

Edmund Burke gained renown as the leading orator of the Whig Party (the opposition) during Britain’s most prosperous period. He passionately defended what he believed to be right, persuading his opponents with fervor. Whether criticizing the corrupt governor in the Indian colony or opposing the unreasonable tax increases in the American colonies, he freely expressed his opinions against injustices.

One of his most well-known opinions concerned an event in France, a country long at odds with Britain across the English Channel. To us, the French Revolution symbolizes human dignity, human rights, and peace. Burke commented on this. He freely discussed his thoughts based on solid experience.

His arguments were communicated to the public through parliamentary speeches and publications. In France, where many philosophers emphasized the power of reason, the most emotional revolution took place. Observing the revolution’s processes, Burke predicted that the French Revolution would never achieve the ideal society envisioned by the revolutionaries. The freedom sought by the French revolutionaries was a form of emotional outburst that stepped outside the bounds of reason. He was very wary of such common sense crossing over to Britain. Hence, he published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the year after the revolution broke out.

When asked, “Who is Edmund Burke?” most would answer that he is a conservative fixated on certain principles. Indeed, the current Conservative Party in Britain has interpreted him to fit their perspective. However, a closer look at his arguments reveals traces of applying and examining universal principles to fit the circumstances rather than adhering to any fixed truth. A true liberal distinguishes between universal principles and reality and strives to get closer to the universal principles. That is the true image of a conservative.

Regarding Edmund Burke’s claims, attention is not focused on their content but on his liberal attitude towards politics, diplomacy, and culture. I am interested in his young works that shaped such an attitude and way of thinking. I believe the reason his ideas resonate not only in the West but also in Asia is because they pursue human freedom. I believe examining Burke in Asia will provide an ideological foundation for the maturity of civil society in the East.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공통점

부엌의 싱크대가 부서져서 보수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연히 지금까지 썼던 싱크대와 같은 모델로 구입해서 설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최근 설거지가 많이 늘어서 체력적으로 힘든데 식기세척기도 추가할까? “

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리고 기존에 설치되었던 모델보다는 최신형 싱크대를 찾아본다. 

‘식기세척도 가능한 싱크대’!

비록 싱크대만 고장 났지만 부엌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가능성(선택)도 존재한다. 아니면 집 전체 구조를 바꾸고 리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금 더 개선된 싱크대’ 정도의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다.

흔히 어떤 사회 문제에 직면했을 때 보수주의자들은 지금까지 것들을 ‘지키려고 한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균열이 생긴 사회문제를 보수할 때는 어떠한 형태로든 기존의 제도를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사고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식기세척기가 달린 싱크대’

이 생각이 기본적인 보수주의자들의 사고다. 얼마나 지극히 인간적이고 리얼한 선택인가?!

(그렇다고 진보주의자들도 집 전체 구조를 바꾸려고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 사이에 아직 서로 알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사적인 이익이 아닌 공적인 이익으로 말이다.

국가간의 분쟁으로 인한 개인의 희생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동생을 데리고 일본에 건너왔다. 조선에는 먹고 사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족에 깊은 애착을 가진 아버지의 생사를 건 결단이었다. 나무가 없는 산을 바라보니 여기가 일본인지 조선인지 구분이 안 되었지만 광부로서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어둠컴컴한 동굴에 매일 들어간다. 우린 행복했다. 매달 나오는 급료, 함께 고생하는 가족들이 조그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그 순간이 조선에서는 꿈꿀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실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패전했다고 한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우리 고향 함경북도 청진시에는 갈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이 조금 흘러 조선이 두 개의 나라로 나눠졌다고 한다. 일본은 영주권을 주는 대신 국적을 정하라고 한다. 한국인가? 북한인가? 

-위의 일화는 픽션입니다.

My father and mother brought my younger sibling and me to Japan. Life in Joseon was too difficult. It was a life-or-death decision by my father, who had a deep attachment to his family. Looking at the mountains without trees, it was hard to tell if this was Japan or Joseon, but as a miner, my father went into dark caves every day for his family. We were happy. The monthly salary and the moments of our small community struggling together were something we could never have dreamed of in Joseon, making it all the more real.
Then one day, they said Japan had lost the war. They said we couldn't go back to our homeland. They said we couldn't go back to our hometown of Chongjin City in North Hamgyong Province. A little time passed, and they said Joseon had been divided into two countries. Japan offered us permanent residency but told us to choose our nationality. South Korea? North Korea?

-The above story is a work of fiction.

재일 조선인의 삶은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희생으로 덮인 인생이었습니다. 재일 조선인은 현재 어느 나라에 속하여 있는지 상관없이 당시의 국가 권력들 간의 희생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재일 조선인의 문제는 문명국가인 한국 정부가 일본에서 인간으로써 누려야할 자유를 보장 받을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