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삶을 주도하는 사람의 유익

1980년대-90년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자유”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모습들이 보입니다. 지금보다 정치적/경제적으로 불안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인권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법률도 없었던 시대였음에도 그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있다”라는 인상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결정에 따른 어떠한 결과라도 “책임의 자물쇠”를 채우고 그 열쇠를 자신들이 소유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열쇠를 가지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곤 했습니다. 심지어 하찮아 보였던 결과 속에서 보물들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불행한 시간도 행복한 시간도 그들 것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타인에게 시간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빼앗긴 개인은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삶으로 인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내 것을 놓아버리는 습관으로 “타인”의 것이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진학, 취업, 결혼, 노후 생활…

오늘 하루, 주어진 인생을 타인들 속에서 “자신”의 모양으로 만들어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이든 불행한 인생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삶을 선택해야겠죠. 그 결단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은 누구보다 큰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자유는 오로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자만 느끼는 가장 큰 유익입니다.

The Benefits of Leading One’s Own Life

Watching videos from the 1980s and 90s reveals traces of “freedom” deeply etched into the lives of people from that era. Despite being politically and economically unstable compared to today, and lacking the basic laws that guarantee the human rights we take for granted now, they seem to have had a sense of “leading their own lives.”

People who led their own lives had “their own” time regardless of the circumstances. Whatever results came from their decisions, they locked them with the “key of responsibility” and kept that key to themselves. They would open the door and walk through whenever they wanted. They even found treasures in seemingly trivial outcomes. Both unhappy and happy times were theirs.

At some point, the time given to individuals ceased to be “theirs.” They began to lose their time to others. As a result, these individuals, whose time had been taken, started to lead lives dragged by others. Gradually, by the habit of giving up their own things, they began to mistake “others'” things for “their own.” Academic advancement, employment, marriage, and retirement…

Today, we need to practice shaping our given lives into “our own” forms amidst others. We must choose to embrace and live through both happy and unhappy lives with courage. I know how difficult this decision can be. However, an individual can gain the greatest “freedom” by doing so. That freedom is the greatest benefit that only those who live “their own” lives can feel.

자신의 방문 열어보자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 자아성찰은 더럽고 악취가 가득한 방문을 여는 것고 같다. 아무리 아름답게 상상을 해보아도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방의 열쇠는 나만 소유하고 있고 열수 있다. 그리고 그 방은 내 마음의 집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에 방을 열고 청소하지 않는다면 집안 전체가 악취와 퍼질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내 마음의 집을 무너뜨려서 악취자체를 없애던가?

•더럽고 악취나는 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던가?

•방을 자주 청소하면서 살던가?

내 마음의 방안이 더러워지는 원인이 어딘가에 있겠지만 그것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집의 설계도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마음의 집은 나의 의도가 전혀 들어가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 원인을 찾는것은 포기하는 것이 낫다. 

자아성찰을 하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처음에는 힘들지라도 조금씩 열어보자. 혹시 아는가. 보물을 찾을 수 있을지!

국가간의 분쟁으로 인한 개인의 희생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동생을 데리고 일본에 건너왔다. 조선에는 먹고 사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족에 깊은 애착을 가진 아버지의 생사를 건 결단이었다. 나무가 없는 산을 바라보니 여기가 일본인지 조선인지 구분이 안 되었지만 광부로서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어둠컴컴한 동굴에 매일 들어간다. 우린 행복했다. 매달 나오는 급료, 함께 고생하는 가족들이 조그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그 순간이 조선에서는 꿈꿀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실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패전했다고 한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우리 고향 함경북도 청진시에는 갈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이 조금 흘러 조선이 두 개의 나라로 나눠졌다고 한다. 일본은 영주권을 주는 대신 국적을 정하라고 한다. 한국인가? 북한인가? 

-위의 일화는 픽션입니다.

My father and mother brought my younger sibling and me to Japan. Life in Joseon was too difficult. It was a life-or-death decision by my father, who had a deep attachment to his family. Looking at the mountains without trees, it was hard to tell if this was Japan or Joseon, but as a miner, my father went into dark caves every day for his family. We were happy. The monthly salary and the moments of our small community struggling together were something we could never have dreamed of in Joseon, making it all the more real.
Then one day, they said Japan had lost the war. They said we couldn't go back to our homeland. They said we couldn't go back to our hometown of Chongjin City in North Hamgyong Province. A little time passed, and they said Joseon had been divided into two countries. Japan offered us permanent residency but told us to choose our nationality. South Korea? North Korea?

-The above story is a work of fiction.

재일 조선인의 삶은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희생으로 덮인 인생이었습니다. 재일 조선인은 현재 어느 나라에 속하여 있는지 상관없이 당시의 국가 권력들 간의 희생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재일 조선인의 문제는 문명국가인 한국 정부가 일본에서 인간으로써 누려야할 자유를 보장 받을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합니다.

질문하는 거는 중요한 일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부터는 성경책은 손에서 뗄수가 없는 책 중에 한 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삶을 인도하는데 중요한 세계관이 변했기 때문이죠.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해가죠. 아주 당연하죠. 그리고 사람들마다 세계관은 다릅니다. 심지어는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도 조금씩은 세계관이 다르죠. 이렇게 다양한 이유는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가지고 각자의 고유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물의 모든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이러한 다양함도 나타나지 않았겠죠. 

이렇게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부터는 저의 세계를 깨부수는 작업들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작업의 지침서가 “성경”입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많은 질문들이 생겨났죠.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이 구절이 인간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얼마나 많은 질문이 생겨 날까요?

태초? : 그게 언제야? 우리가 알고 있었던 46억년전 지구는?

하나님? : 이 분이 예수님?

천지? : 하늘과 땅이라는 의미일텐데 그것만 만드셨다고? 

성경책을 접하고 읽어가는 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세계관으로 부터 방어적 사고가 작동하는거 같았어요. 그러면서 많은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생겨 났습니다. 그냥 비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그건 저에게는 불가능 했죠. 

왜냐고요? 

제 세계관을 깨부수는 일이잖아요. 우리가 아주 중요한 일들을 선택할때 많은 거를 따져보고 고르지 않나요? 내 인생이 바뀔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 또는 하나님께 질문을 하면서 성경을 읽어 나가는 습관이 만들어졌어요. 정말 신기한 일은 이러한 작업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의미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대화를 많이 하면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처럼…

인간은 능력의 한계로 인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새로운 지식들이 계속 발견 되어지고 있지만 그 또한 좀더 넓어진 인식의 한계선을 찾은 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세상을 파악해가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을 멈춰서는 안됩니다. 

오늘도 저는 성경 앞에서 질문을 하고 대화를 합니다.

그리고 저의 세계관이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과 확신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