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정치는 부정적인 의미로만 남게 되었는가?

요즘 대한민국의 뉴스는 온통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관련된 정치적 이슈로 가득 차 있습니다. 탄핵결의안 등 국회 안에서 심의되어야 할 정치적 과제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담을 넘어 광화문과 각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정치”라는 숭고한 단어는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점점 혐오스러운 관념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실을 막기 어려워 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라는 단어는 4.19 혁명, 군부 독재, 6월 민주항쟁 등 역사적인 정치적 사건들과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정치는 각 시대에 맞는 ‘정의’를 추구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시대적 가치관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패턴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다이내믹한 정치가 만들어낸 특유의 정치적 습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습성은 정치를 누군가를 ‘악’으로 규정하고 비난하며 끌어내리는 이벤트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영역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라는 국가 운영의 철학적 본질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치는 보다 이성적이고 따뜻하며, 협력과 공생을 요구하는 고도의 사회적 기술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치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직업 정치인들의 활동은 정치의 일부일 뿐이며, 그것조차 왜곡된 형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래 정치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소유한 ‘자기 생존 본능’과 ‘사회성’을 활용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번영과 행복을 추구하는 실용적 학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When Did Politics Become Synonymous with Negativity?

Nowadays, South Korean news is dominated by political issues surrounding President Yoon Suk-yeol’s declaration of martial law. Political tasks that should be deliberated within the National Assembly, such as impeachment resolutions, are rapidly spreading beyond the confines of the National Assembly in Yeouido to Gwanghwamun and other regions. Meanwhile, the once-noble term “politics” is being increasingly tainted by the very people who exploit it, leaving it with a growingly repulsive connotation.

In South Korea, the term “politics” is deeply intertwined with historic political events such as the April 19 Revolution, military dictatorship, and the June Democratic Uprising. Within these historical contexts, politics evolved by pursuing the ‘justice’ of each era. A natural pattern emerged wherein existing values were labeled as ‘evil’ to be overturned. This dynamic approach to politics has become a unique political habit of the nation.

However, this habit has transformed politics into a realm that cannot function without events focused on defining, condemning, and dethroning an ‘evil’ entity. Yet, this is only a fragment of politics’ essence as a philosophical discipline for governing a nation. Politics, in its true form, is a rational, warm, cooperative, and symbiotic art that requires a high level of societal expertise.

It is time to showcase a different side of politics. The activities of professional politicians are merely a fraction of what politics encompasses, and even that is distorted in its execution. At its core, politics is a practical science that utilizes humanity’s innate instincts for survival and sociability to pursue the prosperity and happiness of individuals and the communities to which they belong. It is our duty to restore this original vision of politics.

いつから政治は否定的な意味ばかり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か?

最近の韓国のニュースは、尹錫悦(ユン・ソギョル)大統領の戒厳令に関する政治的な話題で埋め尽くされています。本来、国会で慎重に審議されるべき弾劾決議案などの政治課題は、汝矣島(ヨイド)の国会議事堂の枠を越え、光化門や各地に急速に広がっています。そして、「政治」という崇高な言葉そのものは、それを利用する人々によってますます忌み嫌われる概念に変わりつつある現状を食い止めるのは難しいように見えます。

韓国において「政治」という言葉は、4・19革命、軍事独裁、6月民主抗争などの歴史的な政治事件と深く結びついています。こうした歴史の中で、政治はそれぞれの時代に応じた「正義」を追求し、発展してきました。この過程では、既存の時代的価値観を「悪」として規定し、それを克服することが、自然なパターンとして定着していきました。これは韓国特有のダイナミックな政治が生み出した習性とも言えます。

しかし、この習性により、政治は誰かを「悪」と定義し、非難し、引きずり下ろすようなイベントがなければ動かない領域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しかし、これは国を運営するための哲学的な学問としての政治の本質のほんの一部に過ぎません。本来、政治とはより理性的で温かく、協力と共生を求める高度な社会的技術なのです。

今こそ、政治の別の側面を示す時です。職業政治家の活動は、政治のほんの一部に過ぎず、それすら歪められた形で国家運営が行われています。本来の政治とは、人間が生まれながらに持つ「自己生存本能」と「社会性」を活用し、個人とその属する共同体の繁栄と幸福を追求するための実践的な学問です。この本来の政治を取り戻すために、私たちは行動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그리스도인은 적극적인 삶의 태도에서 신앙의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초대교회 시절 안디옥 교회의 사람들을 믿지 않는 이들이 부르던 별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삶의 목표와 방식이 다른, 다소 독특한 집단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특정한 예배 형식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다른 삶의 가치관과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기보다 사랑을 실천하며, 자신의 유익보다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구체적인 삶의 행동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삶에 대한 그들의 적극적인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강한 신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적극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 그들에게 부어진 성령은 강력한 믿음과 공동체를 형성하게 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신앙 공동체로 이어졌습니다.

교회는 특정한 예배를 드리고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하지만 신앙 공동체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개개인의 신앙 회복입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건강한 믿음이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Christians embody the true essence of faith through a proactive approach to life.

The term “Christian” was originally a nickname given by non-believers to the members of the Antioch Church in the early church era. It referred to a peculiar group whose life goals and ways differed from their own. In other words, Christians lived a lifestyle distinctly different from that of non-believers.

They were not called “Christians” because of any specific worship practices. Rather, the term was derived from their unique values and attitudes toward life. Their actions—prioritizing love over material wealth and seeking the benefit of others rather than their own—were difficult for others to comprehend.

How, then, were Christians able to hold such values? Their proactive attitude toward life stemmed from a strong faith in Jesus Christ as their Lord. Through God’s active and supernatural miracles, the Holy Spirit was poured out upon believers, forming strong faith and communities, which naturally gave rise to faith-based communities.

A church refers to a community that gathers for worship. However, the essence of a faith community lies in the proactive attitude of those who believe in Jesus Christ. The most crucial task today is the restoration of individual faith. When this happens, we can expect to see a vibrant and healthy faith reflected in every area of our lives.

クリスチャンは積極的な生き方を通じて信仰の真価を発揮します。

「クリスチャン」という言葉は、初代教会時代、アンティオキア教会の人々を指して、信じていない人々がつけたあだ名でした。彼らの人生の目標や生き方が自分たちとは異なる、少し風変わりな集団を指す表現だったのです。つまり、クリスチャンは信じない人々とは異なる独自のライフスタイルを持っていました。

特定の礼拝形式を持っていたから「クリスチャン」と呼ばれたわけではないでしょう。むしろ、彼らの異なる人生観や態度を見てそう呼ばれたのです。物質的な豊かさを求めるのではなく愛を実践し、自分の利益ではなく他者の利益を求める具体的な行動は、当時の人々には理解しがたいものでした。

では、クリスチャンはどうして世間と異なる価値観を持つことができたのでしょうか? 彼らの積極的な生き方は、イエス・キリストを主として信じる強い信仰から生まれました。神の積極的で超自然的な奇跡によって信じる者たちに注がれた聖霊は、強い信仰と共同体を形成させ、それが自然に信仰共同体を生み出したのです。

教会とは、特定の礼拝を行い集まる共同体を指します。しかし、信仰共同体の本質は、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人々の積極的な生き方から自然に生まれる現象です。今、最も必要なのは個々人の信仰を回復することです。それによって、私たちの人生のあらゆる分野で健全な信仰が現れることを期待しています。

[의결] 레이와 6년도(2024년도) 추가경정예산 의결

2024년 12월 12일(목), 중의원 본회의가 열려, 2024년도 일반회계 추가경정예산(제1호), 2024년도 특별회계 추가경정예산(특제1호), 2024년도 정부 관련 기관 추가경정예산(기제1호)에 대해 예산위원장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후 3개 안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으며, 제1안은 수정 가결되고, 제2안과 제3안은 가결되었습니다.

Approval of the FY2024 Supplementary Budget (Reiwa 6)

On Thursday, December 12, 2024,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held a plenary session during which reports were presented by the Budget Committee Chair regarding the FY2024 General Account Supplementary Budget (No. 1), the FY2024 Special Account Supplementary Budget (Special No. 1), and the FY2024 Supplementary Budget for Government-Related Agencies (Agency No. 1). Following discussions on the three proposals, Proposal No. 1 was approved with amendments, while Proposals No. 2 and No. 3 were approved as submitted.

令和6年度補正予算議決

令和6年12月12日(木)、衆議院本会議が開会され、令和六年度一般会計補正予算(第1号)、令和六年度特別会計補正予算(特第1号)及び令和六年度政府関係機関補正予算(機第1号)は、予算委員長から報告があって3案に対する討論の後、第1案は修正議決、第2案及び第3案は可決されました。

[입법안] 전기요금 급등에 대응한 한시적 조치로서 전기 사용자가 재생 가능 에너지 전기에 대한 부과금을 청구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 등에 관한 법률안

[취지]
전기요금이 급등한 현 상황을 고려하여, 전기 사용자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함.

[내용]
전기 사용자는 재생 에너지 전기에 대한 부과금을 청구 받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는 재생 가능 에너지 전기 공급 촉진에 필요한 비용 구조에 대해 검토한다.

[관련 법]
: 재생 가능 에너지 전기의 이용 촉진에 관한 특별조치법(2011년 법률 제108호) 2조
1 태양광
2 풍력
3 수력
4 지열
5 바이오매스(동식물에 유래한 유기물로서 에너지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하며, 원유, 석유가스, 가연성 천연가스 및 석탄과 이들로부터 제조된 제품은 제외한다. 제9조 제5항 및 제7항에서 동일)
6 위 각 호에 열거된 것 외에, 원유, 석유가스, 가연성 천연가스 및 석탄과 이들로부터 제조된 제품을 제외한 에너지원 중, 전기의 에너지원으로서 영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것으로서 정령으로 정하는 것.

: 재생 가능 에너지 전기의 이용 촉진에 관한 특별조치법(2011년 법률 제108호) 36조 1항
소매 전기 사업자 등은 납부금에 충당하기 위해, 해당 소매 전기 사업자 등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 전기 사용자에게 해당 전기 공급 대가의 일부로서 부과금을 지급해야 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Legislative Proposal] Act on Measures to Temporarily Prevent Electricity Users from Being Charged Levies for Renewable Energy Electricity in Response to the Surge in Electricity Prices

[Purpose]
To alleviate the burden on electricity users in light of the current surge in electricity prices.

[Content]
Electricity users shall not be charged levies for renewable energy electricity. Additionally, the government shall review the cost structure necessary for promoting the supply of renewable energy electricity.

[Related Laws]

[Act on Special Measures Concerning the Promotion of the Use of Renewable Energy Electricity (Act No. 108 of 2011)] Article 2
In this law, “renewable energy sources” refer to the following energy sources:

  1. Solar power
  2. Wind power
  3. Hydropower
  4. Geothermal energy
  5. Biomass (organic matter derived from animals and plants that can be used as an energy source, excluding crude oil, petroleum gas, combustible natural gas, coal, and products manufactured from these. The same applies to Article 9, paragraphs 5 and 7.)
  6. In addition to the above, other energy sources excluding crude oil, petroleum gas, combustible natural gas, coal, and products manufactured from these, which are deemed sustainable as energy sources for electricity, as specified by a government ordinance.

[Act on Special Measures Concerning the Promotion of the Use of Renewable Energy Electricity (Act No. 108 of 2011)] Article 36, Paragraph 1
Retail electricity operators, among others, may charge electricity users who receive electricity supply from them to pay levies as part of the consideration for the electricity supplied, in order to cover contribution payments.

[立法案] 電気料金の高騰に対する当分の間の措置として電気の使用者に対して再生可能エネルギー電気に係る賦課金の請求が行わ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に講ずべき措置等に関する法律案

[趣旨]
電気料金が急騰している現状を考慮し、電気使用者の負担を軽減するため。

[内容]
電気使用者は再生可能エネルギー電気に関する賦課金の請求を受けないものとする。また、政府は再生可能エネルギー電気の供給促進に必要な費用構造について検討する。

[関連法律]
[再生可能エネルギー電気の利用の促進に関する特別措置法(平成二十三年法律第百八号)] 2条
この法律において「再生可能エネルギー源」とは、次に掲げるエネルギー源をいう。 
一. 太陽光 
二 .風力 
三.  水力 
四 .地熱 
五 .バイオマス(動植物に由来する有機物であってエネルギー源として利用することができるもの(原油、石油ガス、可燃性天然ガス及び石炭並びにこれらから製造される製品を除く。)をいう。第九条第五項及び第七項において同じ。) 
六 .前各号に掲げるもののほか、原油、石油ガス、可燃性天然ガス及び石炭並びにこれらから製造される製品以外のエネルギー源のうち、電気のエネルギー源として永続的に利用することができると認められるものとして政令で定めるもの

[再生可能エネルギー電気の利用の促進に関する特別措置法(平成二十三年法律第百八号)] 36条1項
小売電気事業者等は、納付金に充てるため、当該小売電気事業者等から電気の供給を受ける電気の使用者に対し、当該電気の供給の対価の一部として、賦課金を支払うべきことを請求することができる。

목적 없는 자기계발의 한계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느 서점을 가더라도 자기계발서 코너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고자 동기부여의 계기를 책에서 찾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을 연마하고 변화하려는 자세는 자기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본질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 외부에 있는 미학적 가치’를 위한 자기계발은 어느 순간 의욕을 잃고 포기하기 쉽습니다. 즉,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기계발은 중도에 멈추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마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는 오래 걸을 수 없는 원리와 같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을 꾸려나갑니다. 생존과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감정적, 이성적 동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위협이 줄어든 반면,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내면이 아닌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자극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공유되며 동경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이를 모방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삶’을 따라하려다 자신의 삶을 개조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계발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결국 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과 유사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삶을 참고하며,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The Limits of Aimless Self-Development

In both Korea and Japan, it’s common to see people gathering in the self-help sections of bookstores. Most of them seem to be seeking a source of motivation from books to bring about change in their lives. The attitude of refining and transforming oneself is essential and fundamental to personal growth.

However, self-development pursued for “external aesthetic values” often leads to losing motivation and giving up midway. In other words, self-development that doesn’t consider one’s own nature is more likely to end in failure—much like how wearing ill-fitting shoes makes it impossible to walk long distances.

Humans are driven by instinct to navigate life. The desire for survival and beauty serves as significant emotional and rational motivators. In today’s world, threats to survival have decreased, but the instinctual drive for beauty has grown stronger.

People have begun to seek beauty “outside themselves,” stimulated by external sources rather than inner reflection. As they admire the glamorous lives shared by others, they aspire to imitate “their lives” and attempt to remodel “their own lives.”

This kind of motivation for self-development might yield short-term results but often leads to abandonment in the long run. To overcome this, we need to revise the order of priorities. First, we should take time to understand ourselves, then look to the lives of those who have lived the kind of life we aspire to. By doing so, we can transform ourselves in a way that suits our personal style. When we shift this order, we can truly live a life that is authentic to ourselves.

目的のない自己啓発の限界

韓国でも日本でも、どの書店に行っても自己啓発書のコーナーにはいつも人が集まっているのを見かけます。多くの人は、自分の人生に変化をもたらすため、書籍から動機づけのきっかけを見つけようとしているようです。自分を鍛え、変化しようとする姿勢は、自己成長において非常に重要で本質的な態度だからです。

しかし、「自分の外にある美的価値」を追求するための自己啓発は、いつの間にか意欲を失い、途中で諦めてしまうことが多いのです。つまり、自分に合わない自己啓発は途中で挫折する可能性が高いのです。それは、足に合わない靴を履いて長時間歩けないのと同じ原理です。

人間は本能に従って生きています。生存と美しさは、人間にとって重要な感情的・理性的な動機づけとなります。現代社会では、生存本能を刺激する脅威は減少する一方で、美しさに対する本能はますます強まっています。

人々は、社会の流れの中で、自分の内面ではなく感覚器官を通じて外部の刺激から美しさを見つけ始めました。華やかな生活を送る人々の姿が共有され、それに憧れを抱き、「彼らの人生」を模倣しようとします。そして、「自分の人生」を改造しようとするのです。

このような自己啓発の動機づけは短期的には効果があるかもしれませんが、最終的には放棄してしまうことが多いのです。この順序を修正する必要があります。まずは自分を理解する時間を持ち、自分が目指す人生を歩んでいる先輩たちの人生を参考にしながら、自分のスタイルに合った変化を目指すべきです。このように順序を見直すことで、真の自分らしい人生を歩むことができるのです。